바스프는 유럽 내 배터리용 소재 생산 거점들을 마련하면서, 첫 둥지로 핀란드를 낙점했다. 2020년 본격 가동할 이 공장은 전기차 30만대분에 들어갈 양극재를 매년 생산할 예정이다. 바스프가 최근 2차전지 산업 투자가 집중된 헝가리·폴란드를 제쳐두고 우선 핀란드에 투자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 유럽 2차전지 제조업은 ‘유럽의 공장’으로 꼽히는 헝가리·폴란드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2차전지 산업에서 자원 수급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핀란드가 새로운 대체지로 자리잡았다.
핀란드, 니켈과 코발트 등 상업생산 적극 추진
한국세라믹기술원에 따르면 2차전지 원가 중 재료비 비중은 60% 정도인데, 재료비의 44%는 양극활물질이 차지한다. 따라서 양극활물질을 구성하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리튬 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급하느냐에 따라 2차전지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
핀란드가 2차전지 클러스터로 부상하는 이유는 핀란드가 국가 차원에서 니켈·코발트·리튬 등 2차전지 핵심 광물 및 원재료의 상업 생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핀란드 테라페임은 중부 도시 소트카모에 2억4000만유로(한화 약 3065억원)을 투자해 황산니켈 및 황산코발트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테라페임은 핀란드미네럴스그룹(FMG)이 지분 77%를 소유한 자원개발 업체다. FMG는 핀란드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공기업이어서, 테라페임 역시 핀란드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다.
테라페임 소트카모 공장은 2020년 공사를 마치고, 2021년 양산에 돌입한다. 황산니켈·황산코발트의 원재료인 아연·니켈·코발트 황화물은 이 회사가 인근에 보유한 광산에서 직접 조달한다.
삼성SDI·LG화학·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셀 업체들은 배터리 용량 증대를 위해 니켈 함량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안정적인 니켈 수급은 매우 중요하다.
2차전지의 양극재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 혹은 니켈·코발트·망간 처럼 3개의 금속물질을 혼합해 제조한다. 이 때 니켈 함량을 높일수록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고, 전기차의 주행거리도 늘어난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의 니켈 함량은 60%, 배터리 업체들은 이를 80%까지 늘리기 위해 연구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2016년 기준 연간 9만톤 정도였던 2차전지용 니켈 수요는 오는 2025년 50만톤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9년만에 시장이 10배 이상 성장하는 셈이다.
유럽 내에서 코발트 채굴되는 유일한 지역 핀란드
콩고민주공화국(DRC)의 내전 탓에 수급이 불안정했던 코발트 역시 2차전지 생산에 필수 소재다.
핀란드는 유럽 내에서 코발트가 채굴되는 유일한 국가다. 핀란드 코콜라에서 코발트 제련시설을 운영 중인 프리포트코발트는 곧 연산 4만톤 규모로 황산코발트 생산능력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는 전기차 300만대분 이상의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코발트는 2016년만해도 1톤당 3만2900달러 정도에 거래됐으나, 올해 3월에는 최고 9만55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2차전지 생산량은 급증하는데, 코발트 광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DRC에서 내전 등 정치적 불안정성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2차전지 산업을 육성해온 바스프가 핀란드를 양극재 생산 전초기지로 낙점한 것은 이 같은 원재료 수급 용이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광물자원공사(FMG)의 베사 코이비스토 본부장은 “2025년쯤 유럽 2차전지 시장은 200기가와트시(GWh) 규모까지 성장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전 세계 소재 업체들이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독일 폴크스바겐이 480억달러(한화 약 54조원) 규모의 배터리 발주 계약을 발표했고, BMW도 6월에 수억유로 규모의 배터리 구매 계획을 공개했다. 유럽 내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전기차 개발을 추진 중이어서 향후 2차전지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내외 2차전지 관련 업체들이 앞다퉈 유럽 내 생산기지 투자에 나서고 있고, 그 중에 천연자원이 풍부한 핀란드가 대상지로 부상하고 있다.
풍부한 인적자원, 전기요금 등 인프라 비용은 낮아
핀란드의 엔지니어 인건비·전기요금 등 생산기지 투자에 필수적인 여건이 유럽 내 다른 국가에 비해 유리한 것도 2차전지 관련 업체들의 발길을 끌어 당긴다.
파이낸셜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의 평균 인건비는 인접국인 스웨덴에 비해 3.9% 저렴하고, 독일에 비해서는 16.3% 낮다. 향후 2022년까지 인건비 상승률 전망도 0.9%에 불과하다. 최근 2차전지 산업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헝가리가 4.1%인 것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유럽 내 다른 제조업 기지인 슬로바키아는 2022년까지 인건비 상승률 전망이 5.7%에 이른다.
전기요금은 유럽연합(EU) 평균의 60% 수준이다. 2016년 기준 EU 회원국의 1메가와트시(MWh) 당 전기요금은 102.9유로(한화 13만1420원)지만, 핀란드는 59.4유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