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올해 부가가치세, 담뱃세 등 간접세 관련 세법 개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소득·법인세 등 이른바 ‘부자 증세’에 주력하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부가세 인상을 권고했고 야당은 담뱃세를 내리자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김동연 부총리 “부가세·소비세 인상? 전혀 검토 無”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했다. 김 부총리는 최근 과로로 결막염에 걸렸다.[사진=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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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부가세, 소비세 인상은 전혀 검토한 바 없다”며 “(조세·재정) 특위도 이 문제를 건드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일 발표된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부가세, 담뱃세 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논의 결과를 내년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현행 부가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7년 도입 이후 현재까지 세율 10%를 유지하고 있다. 담배에는 담배소비세, 개별소비세,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건강증진부담금 등이 붙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2015년 담뱃세 인상으로 현행 담배 한 갑 가격(4500원) 중 3000원 이상이 이른바 담뱃세다.
지난해 부가세는 국세(242조6000억원) 중에서 부가세는 61조8000억원으로 소득세(68조5000억원)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 담뱃세는 2014년 7조원, 2015년 10조5000억원, 2016년 12조4000억원으로 매년 늘어났다. 내수 경기가 좋지 않고 간접세 부담이 만만치 않는데 부가세가 인상되면 소비가 더 위축되고 자영업자들의 아우성만 커질 수 있다. 탈세가 기승을 부려 새는 세금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OECD “부가세 올려야”
| 기획재정부는 현행 부가세 세율(10%)이 OECD 평균보다 낮다고 밝혔다.(출처=기획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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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김 부총리가 이 같은 간접세 인상에 선을 그었지만 외부 압박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3월 OECD는 ‘구조개혁평가보고서’(Going For Growth 2017)에서 “간접세 확대는 빠르게 증가하는 사회(복지)지출 재원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고 성장을 높일 수 있다”며 한국에 부가세 인상을 권고했다.
랜들 존스 OECD 한국 경제 담당관은 지난해 5월 ‘OECD 한국 경제보고서’ 발표 세미나에서 “환경세나 재산세, 부가세 등을 높이는 것을 장려한다”며 “투자나 근로에 방해요소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을 지키려면 5년간 178조원 재원이 필요하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소득세·법인세 인상(세수 효과 연간 3조6300억원)만으로는 재원이 부족하다.
국책연구기관은 토론회를 열고 다각적인 증세 논의에 나선 상황이다. 논의 대상엔 간접세도 포함됐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지난달 1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죄악세(罪惡稅) 범위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죄악세는 술, 담배, 도박, 경마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상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진보 학계에선 내년 지방선거 이후 보편적인 증세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참여연대 전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부담 여력이 있는 고소득자, 고액자산가, 대기업이 먼저 부담하고 점차 소비세와 같은 보편적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며 소득세→사회보험료→소비세 순으로 인상하는 ‘누진적 보편증세’를 주장했다.
홍준표 “담뱃세·유류세 내려야”
| 2015년 1월 담뱃값 인상 이후 반출량도 꾸준히 늘면서 지난해 담뱃세가 12조원을 돌파했다. (자료=기획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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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당은 ‘서민증세’부터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한 갑당 4500원인 담뱃값을 약 2500원 정도로 내리고 휘발유·경유·LPG 리터당 가격을 최대 28.5% 내리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홍준표 대표는 “민주당은 반대하고 있지만 서민 감세 차원에서 우리는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연간 수조원 씩 담뱃세를 과도하게 올려 서민에게 부담이 되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라며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한국당은 정치적으로 손해볼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서민 감세’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