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 일주일, 2차 병원도 `위태`…협상은 `묘연` (종합)

전공의 파업 일주일째, 2차 병원 `포화 상태`
"의사가 없다고 한다…고래 싸움에 환자만 등 터져"
응급실엔 `다른 병원 이용 권고` 안내도
정부·의협 '강대강' 대치 여전
  • 등록 2024-02-26 오후 5:19:44

    수정 2024-02-26 오후 10:07:53

[이데일리 이유림 황병서 이지현 기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일주일째, 병원의 혼란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주요 대형 병원에서 소화하던 중증·응급환자들이 2차 병원으로 몰리면서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고 전임의까지 파업에 동참할 경우 2차 병원마저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 사회의 강대강 대치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에게 “오는 29일까지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렸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런 식으로 물러설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사직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26일 지방의 한 2차 병원이 진료받으려는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사가 없대요” 빅5 퇴짜에…2차 병원도 ‘도미노 위기’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삼성·서울성모) 대형 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사태가 이어지면서 인근 종합병원 등 2차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26일 취재진이 찾은 2차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2차 병원에서도 진료 일정을 잡기 쉽지 않다며 ‘병원 뺑뺑이’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아흔을 바라보는 모친을 휠체어에 태워 이 병원을 찾았다. 박씨의 어머니는 정형외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한 차례 퇴짜를 맞았다. 그는 “의사가 없다고 한다. 엄마가 고령이어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이곳에서 마저 당장 수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애달픈 환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날 서울 시내 2차 병원들의 진료 접수창구는 평소보다 많은 환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내부 곳곳에는 “예약 대기 1~2시간 소요, 당일 접수 2시간 이상 소요”라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남성 김모씨는 “아내가 심장 질환이 있어서 올해 초 대학병원 진료를 받았다”며 “그런데 의료 파업 때문에 진료 예약이 너무 길어져 부득이하게 병원을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80대 보호자 김모씨는 “아내가 지난주부터 기침이 심해지고 열도 반복돼 덜컥 겁이 났다”며 “원래 대학병원을 가려 했는데 요즘 진료를 받으려면 오래 걸린다고 해 이쪽으로 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현재 의료 공백을 떠안고 있는 2차 병원마저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응급실이 문제다. 이날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센터에는 ‘응급의료센터장’ 명의로 “응급실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진료대기가 길어질 수 있다.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 이용을 권고드린다”고 공지문이 붙었다. 다른 병원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오후 1시 15분 서울 보라매병원에 응급환자를 태워 도착한 구급차는 응급센터를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만약 전임의들까지 의료현장을 떠난다면 2차 병원의 과부하는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 전임의의 경우 나름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분들이라 아직 파업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하고) 전임의까지 집단 행동에 동참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9일까지 복귀하라” vs “이렇게 물러설 거면 시작도 안 했다”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7시 기준 보건복지부의 주요 100개 수련병원 서면점검 결과 소속 전공의의 약 80.5% 수준인 1만34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또 소속 전공의의 72.3%인 9006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 확인됐고 총 14개 의과대학에서 847명이 휴학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일부 전임의들은 이달 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의란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들로, 현재 전공의가 빠진 의료 현장을 버티고 있는 인력들이다. ‘빅5’의 전임의는 1400명 수준인데 이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고 파업에 동참한다면 아슬아슬한 현 상황이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의사 사회에 현장 복귀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정부는 그동안 전공의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지만 오는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사법처리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면허가 정지되면 사유가 기록부에 기재가 된다”며 “한국 의사 그만두고 미국의 의사시험을 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기록에 남은) 한국 의사 면허 등이 참조가 될 거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 즉시 환자 곁으로 복귀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강경하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가 3월부터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협박’을 했다”며 “면허정지와 사법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다리를 파괴하는 행동이며, 전공의들이 다치면 모든 의사 회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의료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 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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