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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은 일제히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의 회의가 사실상 “결정은 미국이 한다”는 체념 섞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자국민과 아프간 협력자 등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철수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게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 주장이었지만, 미국이 예정대로 8월31일까지 철수를 마친다는 입장을 고집하면서다.
이는 가뜩이나 아프간 사태로 균열이 생긴 미국과 서방 국가들 사이 마찰을 키웠다는 평가다. G7 유럽 국가들은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이 주도한 아프간전에 자국 군대를 파견해 힘을 실어주고,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전 종식을 선언하며 미군 철수 결정할 때도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예상 외로 미군이 급박하게 철수하며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을 장악하고, 이 과정에서 아수라장이 펼쳐지자 국제연합군으로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 것은 물론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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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간 철수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식 ‘미국 우선주의’가 있다는 분석이다. CNN은 “아프간에 더 머무를 경우 탈레반과 공개적으로 대립하거나 미국인 사상자가 늘어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무장단체 탈레반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CNN은 진단했다. 오는 31일까지 철수하겠다고 미국이 국제사회에 공언함으로써 “31일이 레드라인”이라는 탈레반 경고에 따르는 모양새가 아닌, 미국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의 지시를 효과적으로 따르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굴욕적인 사실을 아닌 것마냥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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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탈레반 수중에 떨어진 아프간은 이슬람 테러 집단들의 집결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전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한동안 세력이 축소됐지만 미군 부재를 틈타 다시 부활하는 모양새다.
미국에 협력한 이들을 향한 탈레반의 ‘피의 숙청’도 이미 시작됐다. CNN에 따르면 지난 23일 탈레반은 미국 정부를 도운 아프간 통역관 형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앞서 “복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을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투항을 권유했지만 당초 공언과는 상반된 행동이다.
또한 탈레반은 아프간 내 직장인 여성들에게 당분간 외출 금지를 선언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24일 “안전을 담보할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 집에 머무르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표면상으로는 보안군이 여성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나 외출, 교육 등을 금지시킨 과거로 회귀하려는 물밑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편 아프간에서는 반(反) 탈레반 전선도 세력을 모으고 있다. ‘장군의 아들’로 불리는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는 탈레반 저항군 민족저항전선(NRF)을 이끌며 탈레반과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탈레반 공세 속에서도 NRF는 병력 수천 명을 확보하며 탈레반과 싸울 준비가 됐다고 BBC는 전했다.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는 아프간 국부(國父)로 불리는 전쟁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이다. 마수드 장군은 1980년대 소련에 맞서 판지시르에서 계곡 전투를 이끌었으며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는 이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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