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사기"…FTX는 어떻게 몰락했나

뱅크먼 프리드, 2017년 김치프리미엄으로 돈 벌어
2019년 FTX 설립 직후부터 고객 돈에 '손'
알라메다에 마이너스 계좌 내주기도
美 검찰,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최대 115년형
  • 등록 2022-12-19 오후 6:57:26

    수정 2022-12-19 오후 10:18:42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사기 사건이다” 파산한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 사건을 맡은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 검사의 말이다. 한 때 320억 달러(42조1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샘 뱅크먼 프리드는 바하마 감옥에서 미국 송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뉴욕검찰이 적용한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최대 115년형을 받게 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낸 민사소송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SEC는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송 서류에서 뱅크먼 프리드가 처음부터 고객 돈에 손을 댔고, 수년간 지속해왔다고 지적했다.

뉴욕검찰의 기소장과 금융 규제 당국의 소송장을 살펴보면, FTX의 몰락은 뱅크먼 프리드를 중심으로 한 몇몇 이너서클의 고객 대상 사기 행각, 방만한 경영의 결과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샘 뱅크먼 프리드 (사진=ABC뉴스)
뱅크먼 프리드, 2017년 차익거래로 돈 벌어...한국 ‘김치프리미엄’ 적극 활용

뱅크먼 프리드는 2017년 11월 캘리포니아 버클리 한 사무실에서 가상자산 헤지펀드 알라메다 리서치를 설립했다. MIT를 졸업하고 유명 퀀트 트레이딩 회사인 제인 스트리트 캐피털에서 근무한 그는, MIT 동창인 개리 왕과 함께 가상자산 산업에 뛰어들었다. 알라메다는 차익거래로 돈을 버는 업체였다. 한 거래소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다른 거래소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뱅크먼 프리드와 왕에게 큰 수익을 안겨준 시장이 됐다. 그들은 한국과 다른 지역의 가격 차를 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 “김치 스왑”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2019년 FTX 설립 후 한 달 만에 고객 돈에 ‘못된 손’

뱅크먼 프리드와 왕, 그리고 UC버클리 졸업생 니샤드 싱은 2019년 4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닷컴을 설립한다. “혁신적인 기능과 반응형 플랫폼,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앞세웠다. FTX는 출범 초기부터 상당한 고객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9년 하루 선물 거래량만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CFTC에 따르면 뱅크먼 프리드는 FTX닷컴을 설립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고객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내부 이너서클 몇몇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게 고객 자산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게 CFTC의 조사 결과다. 특히 관계사인 알라메다는 FTX 고객이 예치한 가상자산을 자신들의 투자 활동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이 합법적으로 고객의 자산을 활용해 투자하는 ‘재담보 설정(Rehypothecation)’이 아니었다. 어떤 허가나 동의 없이 고객의 자산으로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했다. FTX는 이용 약관에 “고객이 허용하지 않는 한 FTX나 알라메다가 고객 자산을 어떤 용도로든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알라메다가 고객 돈을 사용한 건 사기로 간주된다”고 CFTC는 지적했다. 뉴욕검찰도 뱅크먼 프리드가 FTX 설립 초기부터 고객 자금을 사용해 투기성 자금을 조달했다고 봤다.

(사진=AP)
2019년 7월 문제의 FTT 출시

FTX는 2019년 7월 자체 토큰 FTT를 출시하고, 같은 해 11월 바이낸스에서 지분 투자를 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린다. CFTC에 따르면 2021년까지 FTX와 자회사들은 약 150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게 된다. 또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량의 10% 가량을 차지하며, 매일 160억 달러 상당의 고객 거래를 처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SEC에 따르면 시간이 갈 수록 FTX의 사기 행각은 단순히 고객 돈을 유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화했다. FTX는 알라메라를 마켓메이커(MM)로 활용해 시장에 부당하게 참여했다. 원래 전통 금융에서 MM은 유동성을 공급해 호가창을 채우고, 스프레드(매수호가와 매도호가의 가격 차)에서 이익을 얻는 업체다. FTX는 알라메다에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예외적인 권한을 부여해 돈을 벌 수 있게 도왔다. SEC에 따르면 2019년 8월 뱅크먼 프리드는 “알라메다가 어떠한 담보도 없이, 마이너스 계좌를 이용할 수 있게 하도록” 거래소 시스템까지 고쳤다. 사실상 홀로 무제한의 신용한도를 가지고 시장에 참여한 것이다.

알라메다가 초단타 매매에서 유리하도록 시스템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FTX 거래소 뒷단(백엔드) 시스템과 직접 통신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열어준 것이다. 알라메다 트레이더들은 다른 사용자들보다 수 밀리초를 단축할 수 있는 급행트랙을 이용할 수 있었다.

온갖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수익률 거둔 알라메다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도 알라메다는 끔찍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알라메다가 법원에 제출한 손실액만 37억 달러(약 5조원) 이상이다. 알라메다의 손실 및 대출 구조는 FTX 붕괴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알라메다는 고객 돈을 아무렇게나 트레이딩에 이용한 것을 넘어, 보이저 디지털,블록파이 등 이미 파산 위기에 놓인 업체에 구제금융 명목으로 자금을 빌려줬다. 알라메다는 차관에 대한 담보로 FTT를 활용했다. 알라메다는 FTT토큰을 소량만 유통시켰다. 이렇게 가격을 통제하며, 정상적으로 시장 가격을 매기지 않고 유리한 가격을 적용해 전체 비축 물량의 가치를 기록했다.

CFTC에 따르면 알라메다는 루나·테라 붕괴 직후인 5~6월 사이 “수많은 마진 콜” 요구를 받았다. 투자자, 대출 기관 또는 규제 기관이 모르는 사이 알라메다는 의무를 이행할 충분한 유동 자산이 부족한 상태였다.

2022년 중반까지 알라메다는 FTX 고객 자금 약 80억 달러를 빼썼다. 뱅크먼 프리드는 하원에서 FTX가 세계적 수준의 위험 관리 및 규정 준수 시스템을 자랑한다고 증언했지만, 파산 신청 후 새롭게 CEO에 오른 존 레이 3세에 따르면 회사에는 보관된 기록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바하마에서 체포된 샘 뱅크먼 프리드(사진=AP)
알라메다 부실 운영 드러나며 코인 뱅크런

위태롭게 유지되던 뱅크먼 프리드 왕국은 지난 11월 2일 가상자산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를 공개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알라메다는 146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70억 달러 이상이 FTT, 솔라나, 세럼 같은 뱅크먼 프리드가 지원하는 코인이었고, 20억 달러는 주식 투자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알라메다의 부실을 확인한 투자자들은 FTT 토큰을 팔고, FTX에서 보유한 자산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FTT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출 기관은 추가 마진 콜을 실행해 알라메다에 대출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알라메다는 이미 고객 자금에 또 손을 대지 않고는 대출 상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FTX에서 고객 자금이 빠져나가는 동시에 FTT가격이 하락하면서 알라메다와 FTX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바하마에서 체포된 뱅크먼 프리드, 미국 송환될 듯

뱅크먼 프리드는 지난 12일 바하마에서 체포돼 수감 중이다. 곧 미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보인다. 바하마와 미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이 맺어져 있고, 최근 뱅크먼 프리드도 미국 송환에 동의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 돌아갈 경우 형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뱅크먼 프리드를 사기, 돈세탁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최대 115년형을 받게 된다.

SEC와 CFTC도 뱅크먼 프리드에 사기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국은 그가 투자자를 상대로 수년간 사기 행각을 저질렀다고 봤다. 뱅크먼 프리드는 투자자들로부터 18억달러(약 2조3300억원)를 조달했는데, 이중 11억달러는 미국 투자자 90여명으로부터 모았다. 이 돈을 자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로 빼돌려 호화 부동산 매입, 정치 헌금 용도로 쓴 것으로 SEC는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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