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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 강화’ 주장 정인이법…“오히려 처벌 어렵게 할 수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관련 입법을 통해 아동학대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입법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대목은 형량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이 사망에 이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최소 형량을 10년 이상으로 높이고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입법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내는 법이 오히려 현장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형량이 세지면 재판에서 그 형량을 인정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에 입증 자신이 없는 사건이나 피해자의 진술이 주된 증거인 (아동학대 범죄와 같은) 사건은 불기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1년 11월 영화 ‘도가니’를 통해 알려진 장애인학교 교직원의 장애인 성폭행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도가니법’ 제정 이후 현황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법은 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최소형량을 7년으로 대폭 늘렸는데 이후 기소의견으로 송치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실제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장애인에대한강간·간음 사건 기소의견 송치 비율은 78.2%였는데, 해당 법이 본격 시행된 후 이 비율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엔 46.8%까지 떨어졌다. 법이 강화된 후 오히려 처벌을 받는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김 변호사는 “대부분 아동학대 사건이 제대로 물증을 찾기도 어렵고, (아동인) 피해자가 스스로 진술하기 어렵다”며 “(도가니법 시행 후) 장애인 범죄도 너무 명백하게 성범죄를 저지른 상황 외에는 기소가 되지 않는 상황인데, 아동학대 범죄도 이런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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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아동학대 문제를 형량 강화가 아닌 예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산 등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아동학대 전문가를 양성하고,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아동학대를 미리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처우가 좋지 않아 담당자가 많이 바뀌는 탓에 현실적으로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고, 경찰 역시 아동학대 부문이 요직이 아니다보니 이를 담당할 메리트가 없다”며 “학대 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 근거 마련과 함께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예산 확보 등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보호전담공무원과 경찰 등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강화해 아동학대 범죄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찰은 각 지방의 경찰청마다 아동학대 전담팀을 구성해 전문성 있는 수사를 진행하고, 아동보호전담공무원은 아동학대 신고 내역 등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면 예방 정책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건만 터지면 숙고 없이 만들어 내는 대책으로는 현장만 힘들어질 뿐 아이들을 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