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일' 된 김환기·박수근·이중섭 NFT경매…"유사논란 불씨 남아"

근대 거장의 세 작품 디지털화·경매 발표 뒤
저작권·진위논란 거세자 이틀만 "잠정 중단"
미술계 "커지는 NFT시장 거래 위험성 상존
관련 정책·안전거래 방안 없인 불씨 여전해"
  • 등록 2021-06-02 오후 4:54:22

    수정 2021-06-02 오후 6:28:30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김환기·이중섭·박수근의 작품이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시장에 나설 거란 예고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마케팅대행사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저작권자의 반발에, 위작 논란까지 불거지자 16∼18일 ‘비트코인NFT’를 통해 진행하려던 경매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계는 단순 해프닝을 넘어 “NFT 거래 위험성을 알린, 유사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는 우려할 일”이란 목소리를 냈다(사진=워너비인터내셔널·이미지=이데일리 조지수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환기·박수근·이중섭.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세 거장이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시장에 나설 거란 예고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저작권자의 반발에, 위작 논란까지 불거지자 경매를 진행하기로 한 해당 업체가 잠정적인 중단을 발표했다.

마케팅대행사 워너비인터내셔널은 “미술등록협회를 통해 원작에 대한 양도계약서·감정서 등 관련 서류 및 내용을 모두 확인 후 진행했다”며 “하지만 관련 논란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해당 사항에 대한 진위 여부가 확실하게 판단될 때까지 3대 거장들의 작품 경매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업체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을 디지털아트 통합플랫폼인 ‘비트코인NFT’(BTC-NFT)를 통해 NFT 예술품으로 처음 선보인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31일. 16~18일 BTC-NFT 사이트에서 한국·미국·중국·프랑스·영국 등 22개국 동시 온라인경매를 진행할 것이란 계획도 알렸더랬다.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NFT 시장에 등장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번에 경매에 나설 작품은 이중섭의 ‘황소’와 박수근의 ‘두 아이와 두 엄마’, 김환기의 ‘전면점화-무제’다. NFT 아트자산에 대한 관심이 세계를 달구고 있는 중에 나온 발표라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고 나선 건 것은 작품의 저작권자들이다. 하나같이 “작품 디지털화와 관련해 해당 업체와 어떤 협의도 없었고, 합의를 한 바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환기의 작품과 이미지를 소유·관리하고 있는 환기재단은 “김환기 화백과 관련한 상표권·지적재산권은 환기재단에 있다”며 “개인소장자가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지 사용 등 상업적 이용을 할 경우에는 저작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NFT 작품 제작 및 경매를 위한 저작권 사용을 어떤 기관에도 승인한 바 없다”고 못까지 박았다. 박수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박수근미술관은 “저작권을 가진 유족들이 당혹스러워 한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유족과 저작권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논란은 저작권을 넘어 작품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데까지 확대됐다. 가령 박수근의 작품에 보이는 화강암 질감은 1950년대 이후에나 보이는 특징인데 업체가 이미지파일로만 제시한 ‘두 아이와 두 엄마’는 10여년이나 앞선 작품임에도 비슷한 질감을 보인다는 거다. 김환기의 작품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전면점화’ 연작이 탄생한 것은 뉴욕시대(1963∼1974)인데 업체가 제시한 작품은 그보다 20년이나 앞섰다는 거다. 환기재단은 “해당 작품으로 제시한 이미지는 환기재단·환기미술관이 연구·정리한 김환기 공식 아카이브에 등재되지 않은 것”이란 입장도 내놨다.

“원본 진위 증명까진 못해…NFT 거래 위험성은 상존”

앞서 업체는 “각 작품 소장자의 동의 아래 디지털로 전환한 이미지를 판매하며, 원작 소장자는 디지털 작품이 판매되면 로열티를 지급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업체가 처음 이들 세 작품의 NFT 시장 진입을 알릴 때 제시한 자료에는 제작연도나 작품크기 등 기본적인 정보가 아예 빠진 상태여서 의혹을 키웠다.

NFT 미술품 시장 열풍이 촉매가 된 이번 사안에 대해 미술계에선 “우려했던 일”이란 입장이다. 미술품 투자 분위기에 급하게 편승해 NFT 디지털 작품의 저작권 침해나 표절, 모조품 제작 사례 등이 빈번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다. 결국 “관련 정책이 부재하고 온라인 안전거래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선 NFT 디지털 예술품 거래의 위험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NFT 예술품 거래 플랫폼이 원본에 대한 진위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파일에 고유값을 부여해 유일무이한 원본성·소유권을 증명하는 것과 근대 작품의 원본을 디지털화해 NFT하는 것은 다른 접근”이라고 말했다. 캐슬린 킴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NFT화 한다는 것은 실물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나 영상 등을 불록체인 상 디지털 장부에 영구 기록하는 것”이라며 “실물 작품을 디지털 이미지로 복제하여 전송하고 전시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가 없었다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도 전했다.

해프닝? 다시 불거질 문제…관련 정책·안전거래 방안 필요

이번 해프닝이 보여주듯 디지털 예술품 거래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NFT 미술시장’은 국내 미술업체들 사이에선 본격화하고 있다.

마이아트옥션이 타이거리스트와 진행하는 NFT 공모작품 ‘십장생도 6폭병풍’. 19세기 조선 궁중 장식화(종이에 수묵채색·218.5×480㎝)(사진=마이아트옥션).
국내 최대 메이저 경매사인 서울옥션은 최근 서울옥션블루와 함께 블록체인업체 두나무와 NFT 공동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나무는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자회사로 둔 곳이다. 서울옥션·서울옥션블루가 보유한 미술 콘텐츠와 인프라에, 두나무의 블록체인 기반 기술과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상호 간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피카프로젝트는 국내 최초 미술품 전용 NFT 마켓 플레이스 ‘피카아고라’를 개설했다. 여기에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김순응 아트디렉터를 새롭게 합류해, 미술계의 블록체인, 스테이킹으로 미술의 대중화를 열겠다는 목표를 확실히 했다.

고미술품경매사 마이아트옥션은 프로젝트팀 타이거리스트(TIGERLIST)와 함께 NFT 시장에 진출을 선언했다. 첫 작업으로 19세기 조선 궁중 장식화 ‘십장생도 6폭 병풍’에 대한 NFT 작품 소유권 공모를 3차에 걸쳐 35억원 규모로 진행하고, 이를 가상화폐 시장에 상장할 계획을 내놨다.

미술계는 미술품 NFT 시장이 달아오르는 상황에서 이번 ‘김환기·박수근·이중섭 NFT 경매’ 해프닝에서 드러난 것과 유사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이용한 NFT 디지털 예술품 거래 플랫폼은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우후죽순 생겨나는 NFT 또는 공동투자에 기반 예술품 거래 플랫폼에서 원본의 진위를 제대로 증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NFT 디지털 예술품의 원본의 진품성이 확인되지 않거나, NFT 디지털 예술품 자체가 모조품, 표절인 작품인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거다. 이에 따라 “현재 구조에선 NFT 미술품 거래에 한계가 있으며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선 투자자가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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