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친모 석씨만 안다…미스터리 된 '구미 여아' 사건

'아이 바꿔치기' 무죄…사체은닉미수로만 '집유'
법원 "친딸 맞지만 아이 바꿔치기는 입증 안됐다"
바꿔치기 인정되려면 범행 동기·방식 입증 필요해
檢, '바뀐 아이 행방'·'친모 병원 행적' 못 밝혀내
  • 등록 2023-02-02 오후 4:34:05

    수정 2023-02-02 오후 4:34:05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홀로 집에 방치됐다 숨진 구미 3세 여아와 관련한 ‘아이 바꿔치기’ 혐의로 기소된 석모(50)씨가 파기환송심에서 핵심 혐의인 미성년자약취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초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석씨가 친모라는 사실이 DNA 검사를 통해 입증됐지만, ‘사라진 아이’와 바꿔치기가 된 범행방법, 동기, 시기 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었다.

대구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상균)는 2일 미성년자약취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씨에 대해 사체은닉미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핵심 혐의인 아이 바꿔치기(미성년자약취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형량은 대법원 파기환송 전의 ‘징역 8년’에서 대폭 낮아졌다.

석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2021년 4월 22일 대구지법 김천지원 정문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숨진 여아의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사진=뉴스1)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이번 결론은 지난해 6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DNA 검사 결과 등 검찰이 제출한 기존 증거만으로는 ‘아이 바꿔치기’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기 부족하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대법원이 이처럼 유죄가 내려지기 위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도 별다른 추가 증거를 내지 못했다.

대법, ‘유죄 인정’ 위한 기준 제시…檢, 못풀어

아이 바꿔치기 혐의(미성년자약취죄)가 인정되기 위해선 세부적으로 석씨의 자녀이자 방치돼 숨진 A양과, 석씨의 둘째 딸 김모(25)씨가 낳은 B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치기가 됐는지 입증이 돼야 한다. 검찰은 김씨가 출산한 산부인과에서 바꿔치기가 됐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사건은 2021년 2월 석씨 신고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A양이 숨져있는 것을 확인한 석씨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수사단계에서 A양 친모가 김씨가 아닌 석씨라는 점을 확인하고 미성년자약취 등의 혐의로 석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석씨에 대해 아이 바꿔치기에 대해선 미성년자약취, A양 시신을 몰래 매장하려 했던 부분에 대해선 사체은닉미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석씨는 사체은닉미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A양을 출산하지 않았다”며 ‘아이 바꿔치기’는 강력 부인했다.

석씨에 대한 미성년자약취죄로 공소 요지는 ‘석씨가 자신이 낳은 A양과, 둘째 딸 김씨가 낳은 B양을 2018년 3월 31일 오후 5시 32분부터 다음 날인 4월 1일 오전 8시 17분 사이에, B양이 태어난 병원에서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찰 스스로 이 같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31일 신생아, 1일 신생아는 다른 아이인가

김씨의 출산 시기는 3월 30일 오후 12시 56분으로 병원에 정확히 기록돼 있다. 반면 석씨의 출산시기는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아이가 바꿔치기됐다고 검찰이 특정한 시간 전후로 신생아실에 있던 아이가 서로 다른 아이였는지가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이었다.

일단 검찰이 바꿔치기가 이뤄졌다고 특정한 시간 전후로 신생아실에 있던 아이가 바뀌었는지가 쟁점이다. 유죄 판결을 내렸던 1·2심과 검찰은 ‘다른 아이’라고 판단한 핵심 증거는 ‘아이의 체중변화’와 ‘벗겨진 식별띠’였다. 체중변화의 경우 병원이 매일 0시 측정했는데 3월 31일의 경우 3.460㎏이었고, 하루 뒤인 4월 1일엔 3.235㎏로 줄어있었다.

1·2심 재판부는 “다른 사람 몸무게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결론 냈다. 4월 1일 오후 5시 12분 병원이 촬영한 아이 사진에서 우측 발목 식별띠가 벗겨져 있던 점까지 더해 “누군가 임의로 분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증거로만 판단하기엔 섣부른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체중 변화의 경우 신생아의 경우 출생 후 3~4일 동안 태변과 수분 배출로 출생 직후보다 5~10%를 줄어들어 4일째 되는 날 최저 몸무게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 병원에 기록된 아이의 몸무게는 △출생 직후인 3월 30일 3.485㎏ △3월 31일 3.460㎏ △4월 1일 3.235㎏ △4월 2일 3.210㎏ △4월 3일 3.270㎏ △4월 4일 3.305㎏으로 출생 직후부터 4일 차까지 줄다가 이후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아이 체중이 줄었다는 이유를 바꿔치기 근거로 삼기는 애초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구미 ‘여아 바꿔치기’ 사건의 친모 석모씨. (사진=뉴시스)
식별띠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해당 병원 간호사 중에서 “영아 식별띠가 분리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계속 분리되면 카트에 붙여놓는다”고 진술한 점을 지적하며 분리된 식별띠 상태에 대한 보다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2심과 검찰은 4월 2일 0시부터 0시반 사이에 진행된 검사에서는 병원에 있던 아이 혈액형이, 김씨 자녀에게선 나올 수 없는 A형으로 나온 점도 바꿔치기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6개월 미만 신생아에게선 혈액형검사 결과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는 만큼 유죄 근거로 사용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출생 무렵부터 퇴원 당시까지 병원에서 촬영된 아이 사진 속 생김새가 별다른 차이를 찾기 어려운 상황도 검찰의 공소사실 반박 증거로 사용됐다.

석씨가 ’그 시간‘에 직접 바꿔치기했나

다음 쟁점은 검찰이 ’바꿔치기 시간‘으로 지적한 시간에 석씨가 직접 아이를 바꿔치기했는지 여부였다. 여기서 ’3월 31일 오후 5시 32분‘은 석씨의 당일 퇴근시간, ’4월 1일 오전 8시 17분‘은 석씨의 출근 시간이었다.

석씨는 31일 남편, 사위 등과 함께 오후 7시께 산부인과에 도착한 후 병원에 머물다가 오후 8시께 남편 등과 함께 아이를 신생아실로 데려다줬다. 그는 직후 남편과 함께 병원을 나와 오후 8시 30분께 집 근처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햄버거를 구입한 것이 확인됐다.

이를 고려할 경우 검찰이 특정한 시간대 중 석씨의 범행 가능 시간은 31일 오후 8시 30분 이후로 한정된다. 석씨의 범행이 인정되기 위해선 운전을 하지 못하는 석씨가 어딘가에 있던 A양을 병원으로 데리고 간 후 신생아실에 있던 B양과 바꿔치기하고, B양을 유기한 후 가족들 몰래 귀가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석씨의 이 시간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대법원은 “광범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석씨 행적에 부합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도 석씨의 이 시간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밤시간 신생아실 출입 자유로웠나

또 다른 쟁점은 해당 시간에 석씨가 범행을 위해 병원 신생아실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는지 여부였다. 1·2심은 간접증거로서 해당 산부인과의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웠고 신생아실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도 비교적 용이했던 만큼 마음만 먹으면 아이 바꿔치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결론 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간호사는 신생아실 출입 가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고 그 외의 시간엔 신생아실 외부로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았다며 하급심 결론과는 다른 증언을 하기도 했다. 또 당시 해당 병원 신생아 관찰기록지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31일 오후 9시부터 1일 오전 9시까지 3시간 간격으로 아이에게 수유를 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3월 31일 오후 9시부터 4월 1일 오전 9시까지 김씨 딸이 출산한 B양이 신생아실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별다른 추가 증거를 내지 못했다.

석씨 출산시기는 언제인가

석씨가 A양을 출산한 시기도 쟁점이었다. 석씨는 구미의 한 기업에서 2교대로 근무하다가 2018년 1월 27일 퇴사했다가 2월 26일 재입사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이틀 연속 연차를 사용할 수 없는 회사였다. 석씨의 출산 관련 병원 기록이 일절 없는 상황에서 1·2심은 이 기간 석씨가 출산 준비를 위해 회사를 일시적으로 그만둔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석씨가 재입사 후인 2018년 3월 6일 조퇴, 3월 7일 결근을 했던 점을 근거로 출산시기를 그 무렵이라고 판단했다. 1·2심은 구체적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3월경’으로만 출산시기를 추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3월 출산을 앞두고 있어 출산준비를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석씨가 출산 임박 시점에 굳이 재입사를 했다는 것이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석씨가 쉬는 기간 출산준비를 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고, 석씨 퇴사가 회사 요구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산부인과 퇴원 시 데리고 나온 아이는 4월 9일 탯줄이 떨어졌다. 통상 출생 후 열흘 정도만에 탯줄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석씨의 출산 시기가 검찰 주장대로 ’3월 초‘라면 탯줄이 떨어진 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아울러 석씨가 재입사 후 검찰이 범행 시점으로 지목한 3월 31일까지 이틀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씩 근무한 만큼, 바꿔치기 전까지 A양이 어떤 식으로 양육됐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 바꿔치기 동기도 확인 안돼

또 다른 쟁점은 석씨가 아이 바꿔치기를 할 동기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1심은 “석씨가 B양보다 자신이 출산한 A양을 더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김씨가 A양을 양육하게 하려고 바꿔치기 했다”고 판단했다. 2심은 “범행 동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미성년자약취죄에선 범행 동기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별도 판단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대해 “범행동기는 간접증거에 의한 증명 여부가 문제되는 사건에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증명력에 한계가 있는 간접증거만 있는 존재하는 경우 범행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숨긴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간접증거 증명력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것이 형사증거법 이념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숨진 여아를 집에 홀로 방치했다가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이 확정된 김모씨. 김씨는 숨진 여아를 자신의 친딸로 알았으나, 경찰 조사 결과 이부자매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연합뉴스)
1심의 범행동기 판단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딸과 손녀가 가족들을 모두 속이고 바꿔치기 범행을 감행할 만큼 애정에 있어 차이가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상당기간 방치돼 숨진 A양을 돌보지 않았던 행동과 사망 후 사체를 은닉하려 했던 행동 역시 (1심이 판단한 범행동기라면) 설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석씨의 목적과 의도는 석씨 행위가 약취 범행에 해당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고려요소”라며 “이러한 점에서도 동기에 대해 좀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도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애초부터 약취죄 성립될 수 있나

대법원은 A양과 B양이 바꿔치기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미성년자약취죄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약취는 폭행·협박이나 불법적 힘을 수단으로 사용해 피해자를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관계나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기나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석씨가 B양의 외할머니이므로 설령 실제 아이를 바꿔치기 한 점이 인정되더라도 B양 친권자인 김씨 등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자유·안전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약취행위로 평가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석씨 행위의 약취 여부 판단을 위해선 석씨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수단과 방법, B양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B양의 생사여부 등 소재에 대해 검찰이 전혀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애초부터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당시 대법원은 석씨에 대한 2심 판결을 파기해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내며 ’무죄 취지‘가 아닌 ’심리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즉, 검찰이 추가적인 증거를 통해 대법원이 ’심리 부족‘이라고 지적한 부분을 입증할 경우 유죄 판결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같은 대법 판결 취지에 따라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한편, 검찰에 추가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아울러 재판부 스스로도 “미스터리한 사건”이라며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소송 지휘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선 석씨 측 요구에 따라 ’키메라 증후군‘ 여부에 대한 추가 심리는 물론, 추가적인 DNA 검사까지 진행했다. DNA 검사에선 이전 검사들과 동일하게 석씨가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유죄 입증 책임을 진 검찰도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석씨의 회사생활 등 행적, 산부인과 간호사 및 수사 경찰 등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추가증거 확보에 열을 올렸으나, 결과적으로 입증에 실패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석씨가 출산 등에서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애초부터 입증이 쉽지 않았던 사건”이라며 “진실을 알고 있을 석씨가 B양 소재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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