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 형식을 빌어 막말을 쏟아냈다. 이중 위협적인 것은 ‘서울이 우리의 과녁은 아니었다’라는 대목으로, 이제는 서울을 과녁으로 삼았다는 의미가 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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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남북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앞두고 실무대표 회담을 개최했다. 북측 대표로 나온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이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송 선생도 아마 살아나기 어려울 게요”라고 말했다.
전후 발언을 통해 의미를 따져보자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보다는 ‘전쟁이 나면 서울도 불바다가 된다’ 쪽에 가깝다. 우리 측 대표인 송영대 통일원 차관이 “전쟁 선언하는 거냐”고 따지자 박 부국장은 “그쪽에서 전쟁선언을 했다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박 부국장은 4년 후인 1998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기자들과 만나 해당 발언에 대해 와전됐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실제 김일성 당시 주석도 이 발언이 지나쳤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도야 어찌됐건 ‘서울 불바다’ 망언에 우리 측 반응을 확인한 북한은 남북 관계 고비 때마다 이 표현을 호출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서울의 불바다’라는 위협으로 16년만에 부활시켰다.
이후부터는 ‘청와대 불바다론’, ‘서울 잿더미’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됐다. 자극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북한은 뒤를 이어서는 ‘워싱턴 불바다’, ‘백악관 잿가루’ 등 대상을 미국으로까지 확장하기도 했다.
김여정이 문 전 대통령 시절에는 서울을 타깃으로 삼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에 맞서 북한은 ‘서울 불바다’를 다시 입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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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백두혈통’이라 일컬어지는 김씨 일가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발언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무게감이 다소 다르다. 2012년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의 동정을 보도하면서 “제일 먼저 서울부터 잿더미로 만들며 나아가서 원수의 아성을 모조리 불바다에 처넣음으로써 쌓이고 쌓인 천추의 한을 기어이 풀고야 말 결의를 다지었다”고 전했으나 북한 특유의 과장된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담화문에는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외무성 대변인’, ‘통전부 대변인’ 같이 비실명이거나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등 선전매체일 경우 원색적 표현을 쓰고 비난 수위를 높인다.
김여정 같이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 자신의 명의를 걸고, ‘조선중앙통신’과 같은 관영매체를 통해 내거는 담화는 보다 공식적인 성격을 띤다. ‘서울 과녁’ 발언이 호전적인 성격을 띠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