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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유가 하락으로 옛 소련에 속해있던 중앙아시아 산유국들이 잇달아 달러 연동제 폐지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해당국 통화도 추락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통화인 마나트화는 달러당 1.55마나트를 기록해 지난 주말인 18일 1.05마나트에 비해 32.3% 급락했다. 올해 1월에 비해서는 반 토막 났다.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대외 경제충격이 확대되는 가운데 외환보유액을 지키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카자흐스탄도 지난 8월 달러 연동제(페그제)를 폐지한 이후 4개월간 텡게화가 40% 이상 하락했다. 러시아도 지난해 말 루블화에 대해 자유변동을 허용한 뒤 올해 26%가량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원유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유가 하락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가는 지난해 말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최근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11년 최저치로 떨어졌다.
달러화는 강세인데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자 달러에 연동된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달러를 풀고 자국 통화를 사들이는 외환정책을 썼다. 그러나 곳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외환보유액은 올초 138억달러에서 1올 초 62억달러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또 35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도 1999년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헐어서 쓰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마나트화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이 쓴 돈만 5억8900만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러시아 경제 부진도 불안감을 키웠다. 세계 2위 산유국인 만큼 러시아도 유가 하락 충격을 상당히 받았고,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방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 루블화 급락이 주변국 경제 변동성을 키웠다.
마나트화가 급락하면서 아제르바이잔 석유산업 등 수출은 수혜를 입겠지만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마나트화로 받는 임금이나 연금, 저축 등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또 급격한 자금유출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팀 애시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사회 안정망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를 보면 왜 당국이 지금까지 통화가치 절하를 미뤘는지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달러화 강세와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중앙아시아 뿐 아니라 중동 산유국들도 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 악화로 달러 페그제를 포기할 것이란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