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젊은 총수’ 시대가 도래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존 관례를 깨고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재계에도 새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16일 서울 양재동 사옥 도서관에서 그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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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29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통상 기존 동일인이 사망하거나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금치산자로 판정받았을 경우에 한해 동일인을 변경해왔다. 하지만 정 회장과 조 회장이 기존 동일인 대신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등 그에 걸맞은 책임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 그룹 명예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음에도 이례적으로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10월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현대차그룹 전반의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기존 자동차에서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전환을 위해 취임 후 곧바로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미국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한 지분 80%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만 약 1조57억원에 달하는 거래다. 올해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장착한
현대차(005380) 아이오닉5와
기아(000270) EV6를 공개하며 전동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현준 회장도 회장 취임 이후
효성(004800)의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을 진두지휘했고,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베트남 투자도 결정하며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왔다. 이외에도 기존 동일인이었던 조석래 명예회장이 올해 87세로 고령이라는 점에서 향후에도 효성그룹의 경영권은 조 회장이 이끌어갈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특히 신기술·신산업 출현, 새로운 경영 철학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급속히 확산하는 등 재계에 ‘젊은 리더십’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 전기차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고 지속 가능한 경영 성과와 중장기 계획을 담은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 계열사 내 ESG 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효성그룹도 조 회장의 지휘 아래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국내 주요기업 ESG 평가에서 A+ 등급을 받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진=효성그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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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향후 경영권 승계 등 젊은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동일인 세대교체를 지속 검토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번 동일인 변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현대차그룹과 효성그룹을 제외한 13개 기업집단에서 동일인 관련 세부자료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하면서 변경 가능성을 열어뒀다.
향후 동일인 변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 기업으로는 LS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코오롱그룹 등이 꼽힌다. LS그룹은 현 동일인이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지만, 실직적인 그룹의 경영권은
LS(006260)의 최대 주주이자 사촌인 구자열 회장이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서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이웅렬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 물러난 상황에서 장남 이규호 부사장이 총수직에 오를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확산으로 젊은 리더십이 각광받고 있어, 세대교체도 빨라지고 있다”며 “기존 관례를 깬 공정위의 동일인 변경으로 재계에서도 새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