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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들여온 로봇 팔부터 테스트 해볼까?” 박사 과정 3년차 이대규(29)씨는 이날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후배 강규리(25·석사) 학생과 로봇 팔 테스트에 나섰다. 콘솔게임기 패드를 들고 이리저리 로봇 팔을 테스트하던 이들은 기존에 연구하던 AI알고리즘과 어떻게 접목이 될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금세 연구에 빠져들었다.
이들 학생은 지난달 말 현대자동차그룹과 서울시가 개최한 국내 최대 규모 대학생 자율주행 경진대회 ‘2021 자율주행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무려 23개팀 중 1위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경진대회에 출전, 수상 경험이 많다. 이전부터 ‘유레카’(과거 대회에 참가했던 팀이름)팀으로도 불리며 타 대학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팀이다.
연구실 내 학생들은 각자의 PC로 로봇, 자율주행 관련 AI알고리즘 등을 연구한다. 이날 만난 이대규 학생도 조그만 노트북으로 팀원들과 연구 과정과 성과를 공유·취합하는 작업을 했다. 옆에서 본 이대규 학생의 노트북 화면에는 각 팀원이 올려둔 ‘커밋’(commit·개발자들이 기존 코드 수정시 변동사항을 기록하는 작업)들이 수백개에 달했다.
이대규 학생은 “자율주행 관련 차량의 추월 및 진을 판단, 사물 및 차량 인식, 도심 신호 등 통신체계 활용, 항법·경로 등을 정하는 작업 등 총 4가지 핵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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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로보틱스 연구실 학생들은 올해 현대차·서울시 자율주행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우승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총 4명으로 팀을 꾸린 학생들은 지난 10월 말부터 한 달간 대회 장소 인근인 서울시 상암동 모텔에서 먹고 자며 테스트를 했다. 하루 평균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이대규 학생은 “타 대학팀들도 매일 새벽 1시 차 없는 시간대를 골라 연구 테스트를 했다”며 “팀들끼리의 신경전도 대단했다. 자율주행차인 것처럼 꾸미고 내부에 사람이 운전하는 팀도 있을 정도로 견제가 심했다”고 회상했다.
KI 로보틱스팀이 우승한 것은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일반적으로 타 팀들은 자율주행차에 GPS를 사용했지만, KI 로보틱스팀은 이를 과감히 버리고 차량에 달린 센서(온보드센싱)로만 승부를 봤다.
이대규 학생은 “GPS는 위성으로 날라오는 전파를 이용하는 건데 고층 빌딩이 많으면 전파가 반사돼 오류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온보드센싱 강화에 주력했고, 도심 교통 체계를 따르면서 추월까지 가능하게 AI 알고리즘을 구축해 가장 빨리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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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난 카이스트 학생들은 각자만의 연구 방향과 목표가 뚜렷했다. 자율로봇 시스템을 연구 중인 강규리 학생은 “최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딥러닝을 활용해 보다 자유도 높은 시스템을 연구하는 게 목표”라며 “수많은 보완 끝에 로봇과 알고리즘이 생각한대로 작동할 때까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이처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건 카이스트와 정부 지원도 한몫을 한다. 박사 과정시 국가장학금이 나오고, 수당, 월급, 아파트(결혼시)도 준다. 정부의 AI·로봇 분야 지원과제도 많아져 연구 환경도 확실히 좋아졌다는 게 학생들의 평가다.
하지만 국가 R&D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도전적인 R&D 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R&D 과제가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다. “윗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R&D 과제의 사례들을 자주 봐왔다. 실질적으로 필요하고 어려운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것이 아직 부족하다.” 이날 만난 학생들이 입 모아 얘기한 불만이다.
이 같은 지적은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가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의 국가 R&D 성공률이 98%에 이르는데 관성에 빠져 성공이 쉬운 연구에만 나서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대규 학생은 “좀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 및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면 한다”며 “실패를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