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에서 불이…법적책임은 누가 지나[이슈포커스]

발화車·보험사·APT관리주체 책임 '부정' 판례
새 안전기준과 책임소재 논의 필요성 제기
전기차 소유자·관리주체 세심한 주의 요구
  • 등록 2024-08-13 오후 4:19:57

    수정 2024-08-13 오후 7:05:02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최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로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고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리는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화염으로 인해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수도관과 각종 설비도 심하게 훼손됐다.

정확한 피해금액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보험업계 등에선 10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피해를 본 차주들이 자동차보험사를 상대로 한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 처리 신청은 지난 주말 600대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법적으로 누가 이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량 들이 전소돼 있다. 전날 오전 6시 15분께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사진=연합뉴스)
4년전 유사 사고…法 “발화車 소유주 책임 묻기 어려워”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자동차 화재 사고와 관련해 우선 살펴봐야 할 법적 개념은 ‘공작물 책임’이다. 민법 제758조에 따르면,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점유자나 소유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서 ‘설치 보존상의 하자’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지난달 대법원에서 확정된 수원지방법원 판결(2020년 용인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은 차량 화재 사고의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20년 7월 15일 새벽 3시경 용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차된 차량 수백대가 전소되거나 그을리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한 차량의 ABS ESC 모듈 내부 합선으로 추정됐다.

이 사건에서 피해 차량들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가 화재 발생 차량의 소유자, 해당 차량의 보험회사,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차량 소유자가 리콜 통지를 무시해 화재를 발생시켰고, 차량 보험회사는 소유자의 책임을 대신 져야 하며,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지하주차장 관리자로서 스프링클러 작동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 보험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화재 발생 차량 소유자의 책임에 대해서는 리콜 통지가 실제로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고, 차량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차량 소유자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차량 보험사의 책임도 인정되지 않았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대해서는 아파트의 실제 관리 주체는 위탁관리업체이며, 입주자 대표회의는 간접 점유자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한 관리업체 직원의 수신반 임의조작을 공작물의 통상 용법에 따르지 않는 이례적인 행동으로 보아 입주자 대표회의에게 이에 대한 방호 조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 판결은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특히 차량 소유자, 보험회사, 공용 시설 관리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판결이 전기차 화재 사고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기차의 경우 그 특수성과 위험성을 고려할 때 일반 차량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 관리가 요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 화재 위험성을 고려하면 ‘전기차 소유자와 관리자에게는 더욱 세심한 주의 의무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 변호사는 설명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쇼핑몰 주차장에 전기차량 화재용 리튬이온배터리 전용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법조계 “전기차 특성 고려한 안전관리로 법적리스크 줄여야”

이에 따라 전기차 소유자들은 만에 하나 발생할 지 모를 법적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기적인 점검, 안전한 충전 습관, 극한 기후 대비, 제조사 공지사항 주지, 전기차 특성을 고려한 보험 가입 등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희봉 변호사는 아파트 관리 주체 역시 전기차 화재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전성이 검증된 충전 설비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전기차 화재에 특화된 소화기를 구비하고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소방설비도 개선하는 것 등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안전관리가 강화된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을 지정하고,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고 주기적으로 훈련을 실시하는 등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하 변호사는 “충전과 관련된 이용 규약을 명확히 정하고 필요한 보험에 가입하는 등 법적 대비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만약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한 증거 수집, 전문가 자문, 보험사와 제조사와의 소통, 관련 기관과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하주차장 자동차 화재 사고의 법적 책임은 현장 상황과 여건, 구체적 사안 등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판례는 차량 소유자와 아파트 관리 주체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고 예방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하 변호사는 “안전과 책임의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모든 관계자가 사고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물론,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통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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