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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는 이번 조사에 대해 실제 차량에 부착된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했다. 문제는 이러한 조사 결과에도 한국에서는 유독 급발진 논쟁이 뜨겁다는 점이다.
실제 해외 선진국에서는 급발진 관련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완성차 업계의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차량 결함으로 차가 스스로 튀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인 ‘급발진’이라는 용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급가속’ 또는 ‘페달 오조작 사고’ 등의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인간적인 실수(휴먼에러)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미국에서조차 아직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없다. 미국에서는 급발진이란 용어 대신 ‘의도하지 않은 가속’(SUA)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09년 토요타의 대규모 리콜을 불러온 사고는 국내에서 ‘급발진 사태’로 불렸지만, 사실 전자계통의 오류가 아닌, 운석 바닥 매트에 가속페달이 끼여 발생한 사고로 결론이 났다. 이후 페달 끼임 현상(pedal sticking down)으로 급발진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보편화돼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급발진과 관련한 이슈가 해마다 거듭 대두하고 있다. 지난 7월 급발진 논쟁을 뜨겁게 만든 ‘시청역 역주행 참사’ 또한 국과수는 급발진 아닌 페달 오조작으로 결론을 내렸고, 검찰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사고 운전자를 구속 기소한 바 있다. 향후 재판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EDR(사고기록장치), CCTV를 비롯해 신발 바닥의 패턴 흔적 등을 볼 때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전문가들은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는 확증편향은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을 스스로 브레이크라고 믿게 되면서 오히려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미디어나 유튜버 등이 내놓는 자극적인 급발진 영상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순간적으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업계 한 전문가는 “대부분 국민들이 급발진 영상을 접하게 되면 감정을 대입하는 경향이 커 과학적, 논리적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급가속 사고는 이번 시청 참변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 잘못 없는 행인의 사망사고를 유발한다.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일 수록 급발진 주장 사고를 다룰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