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5%에서 상당폭 내려오면 목표치인 2%가 되기 전에라도 경제 발전, 금융안정 등을 같이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11월 최종금리 3.5% 전망은 약속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최종금리를 3.5% 언저리 중 어디에 방점을 찍을지에 대해선 고민이 깊어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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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20일 ‘12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을 통해 통화정책의 초점을 ‘물가 안정’에 두겠다고 했지만 동시에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이전보다 높였다. 한은은 2019년부터 매년 6월, 12월에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물가상승률은 전년동기비 5.1% 올라 1998년(7.5%)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물가는 당분간 5% 내외로 오르겠지만 오름폭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렇다고 내년 중 목표치인 2%로 내려올 가능성도 낮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하반기 물가상승률(연간 3.6%)을 각각 4.2%, 3.1%로 내다보고 있다. 공급 부족에 따른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 공공요금 인상 등은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국내외 경기 둔화, 부동산 가격 급락 등은 하방 압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총재는 이날 처음으로 경기와 관련 ‘침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총재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는 만큼 이것이 침체로 가느냐, 안 가느냐는 경계선에 있다고 예측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 달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다. 2000년 이후 2009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장률 전망치다.
이 총재는 “물가가 5% 이상으로 높았을 때는 다른 것을 고민할 필요 없이 물가를 우선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는데 중앙은행이 물가만 보는 것은 아니다”며 “물가가 5%에서 상당폭 내려와 중장기적으로 물가안정 목표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면 물가가 2%로 가기 전에라도 경제의 건전한 발전, 금융안정 등을 같이 고려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 총재는 “(누적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국내 경기 둔화 속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정책금리 변화 등을 함께 고려해 정교하게 정책에 대응하고 금리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조정, 이에 따른 금융안정 저하 가능성, 경제의 각 부문에 미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각별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너무 늦게 대응하면 침체, 일찍 대응하면 물가 상승 우려”
이 총재가 이날 발언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최종금리가 최소한 3.75%로 뛰어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11월 금통위 당시엔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3.5% 이상의 금리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경기에 대한 우려, 금리 인상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많아진 만큼 최종금리는 3.5% 이하에 머물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한쪽에선 연준이 금리 점도표를 통해 최종금리를 5~5.25%까지 높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고려하면 3.5% 이상도 열어둬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재도 금리 인상 종료 시점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진 모습이다. 통화긴축 기조가 과소, 과잉대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에 총재는 “가장 큰 고민거리”라며 “너무 늦게 대응을 하게 되면 경기침체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너무 일찍 대응을 하게 되면 또 다시 물가가 올라가 ‘스탑앤고(stop and go)’에 (빠지는 등) 통화정책 신뢰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두 가지 위험을 잘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스탑앤고는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연준이 물가를 잡은 줄 알고 금리 인상을 중단, 심지어 금리 인하에 나섰다가 또 다시 물가가 뛰어오르면서 금리 인상으로 선회한 경험을 말한다. 그로 인해 1979년 폴 볼커 연준 의장이 선임된 이후 11% 수준이었던 금리를 2년여 만에 20%까지 올려 물가 안정 비용을 더 크게 치른 바 있다.
총재는 원·달러 환율이 9월처럼 7% 가까이 폭등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면서도 미국의 높은 금리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총재는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올랐던 충격이 이제는 천천히 더 길게 오래 갔을 경우 환율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