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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외벌이도 생각하지만 주거비를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맞벌이인 김씨 부부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외벌이의 두 배 이상이다. 당장 손에 쥐는 소득이 두 배다. 직장 생활에 따른 외식비와 교통비, 어린이집 보육비 등도 각 주체의 국내총생산(GDP)을 높인다. 김씨가 은행에서 받은 대출도 부동산 붐에 일조한다. GDP가 각 ‘소득’의 양만 측정하고 그 창출 과정의 질은 따지지 않다보니, 경제생산의 객관적 수치와 경제상황의 주관적 인식간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김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면 오후 내내 학원을 몇 군데씩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고 걱정했다. 김씨처럼 높은 GDP 기여도가 정작 삶의 질과는 괴리감이 있는 경우는 허다하다.
소득만 측정하고 창출과정 안 따지는 GDP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GDP 만능론’을 경계하고 나선 건 GDP 증가율, 다시 말해 성장률이 마치 우리 경제의 명운을 결정하는 듯한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총재는 GDP에 대해 “GDP 0.1∼0.2%포인트 차이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신뢰성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계 학계의 경제 전문가들과 가진 경제동향간담회에서다.
다만 GDP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그간 끊이지 않았다. 김씨 같은 맞벌이는 GDP를 이중으로 높이지만 삶의 질 측면에서는 논란이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 총재가 지난 2008년 당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 등이 참여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측정위원회’를 직접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이 위원회는 GDP가 경제성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출범했다.
이 총재가 이날 “인터넷 빅데이터 활용 등을 통해 GDP 추정방법을 개선하고 생활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 지표를 개발할 것”이라고 한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2%대 전망 매몰된 현실에도 경종 울린듯
이 총재의 언급이 주목받는 건 최근 경제계 기류와도 관련이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최근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는데, 이에 너무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올해 2%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저성장 고착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경제를 양적 지표만 갖고 따지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주장이 나온다”면서 “(GDP로 경제를 판단하는 식으로) 시각을 좁히는 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GDP 증가율을 각 정권의 경제성적표와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있어왔다. 박근혜정부가 ‘나홀로’ 3%대 성장률 전망치를 고수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총재의 발언이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차단한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있다. KDI는 전날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선제적인 인하 기대감도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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