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폭력’ 故최숙현, 성적 만능주의가 불렀다

인권위, 지자체 운동부 관행 등 조사
"전국체전 등서 우수한 성적 위해 선수 관리 방치"
  • 등록 2021-03-03 오후 12:00:00

    수정 2021-03-03 오후 12:00:00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지도자와 선배의 가혹 행위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에 지자체의 성적 만능주의가 또 다른 원인이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고(故) 최숙현 선수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 (사진= 연합뉴스)
인권위는 지난해 6월 최 선수 진정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주시 및 경주시체육회가 운동부 창단 때부터 팀 관리감독과 선수보호에 필요한 제도와 절차를 갖추고 있었는데도 팀 운영 전반을 감독 개인에게만 맡겨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특히 경주시뿐만 아니라 경북도와 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도 전국체전과 도민체전 등의 성적만을 우선하는 문화를 조장하거나 유지해준 관행을 확인했다는 것이 인권위의 판단이다.

최 선수 유족은 지난해 6월 피해자가 경주시 트라이애슬론 팀 감독 및 선배, 물리치료사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등 폭력을 당했고, 이러한 피해 호소에 대해 대한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경주시 등이 적절하게 조치하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피해 사실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 문체부 등 수사기관과 주관 부처가 범행 사실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것을 고려해 인권위는 이러한 최 선수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나 관행 등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경주시는 소속 직장운동부를 본래 목적인 지방 체육 활성화보다는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적 성과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체전과 도민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단기계약(10개월) 선수들을 둔 것이 이러한 운영의 방증이라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또한 직장운동부 운영을 위탁받은 경주시체육회는 우수한 성적을 위한 예산 지원 및 선수 계약을 제외한 선수에 대한 처우와 적절한 예산 사용 여부 등에 대해선 감독하지 않았다. 이는 감독과 일부 선수를 중심으로 팀이 운영되게끔 방치한 셈이 됐다.

관련 내규 등을 보면 경주시나 체육회가 직장운동부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었지만, 예산의 편성과 정산, 선수 재계약과 연봉 등급 평가 등 대부분을 감독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러한 환경 탓에 감독이 부당하게 지원금을 수령하고, 허가하지 않은 물리치료사가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일부 선수를 위해 타 선수들이 희생하고, 감독·물리치료사·선배 선수가 선수들을 폭행하는 일들이 경주시 직장운동부 내에 발생했음에도 이를 적발하거나 구제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성적 중심으로만 전문체육을 육성하는 관행은 오랜 기간 계속돼온 것이고 관행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과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최 선수와 유사한 피해와 권리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와 지자체 직장운동부에 대한 인식 변화를 견인하는 권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경주시장과 경주시체육회장에게는 자치단체별 체전 성적 순위 경쟁이 아닌 지방 체육과 지역 체육의 활성화라는 직장운동부 설치 취지에 맞게 구성원 보호와 관리가 작동되도록 규정과 인력을 보완할 것을, 문체부 장관에게는 지방자치단체의 직장운동부가 성과나 경쟁 중심으로만 운영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한편 최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감독 등 지도자는 최근 중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지법은 지난 1월 상습특수상해 및 교사,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42) 감독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폭행을 주도한 장모(32)·김(26)모 선수는 각각 징역 4년, 1년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팀닥터로 불리며 최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일부 여성 선수들을 유사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운동처방사 안모씨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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