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약속했던 콘텐츠 분야 투자펀드 3200억 원이 유입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케이블TV 방송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M&A)이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 출범 당시 케이블TV(SO)의 규제관할권을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중 어디에 두느냐를 두고 정부조직개편이 늦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SO가 미래부로 넘어간 뒤 정말 ‘소(SO)를 살렸는가’는 미지수다.
콘텐츠 투자펀드 3200억 무산
SK는 합병이 성사되면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법인이 3200억 원(합병법인 1500억 원 출자, 외부 투자유치 1700억 원) 규모의 콘텐츠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드라마와 VR 등 콘텐츠 제작에 2200억 원, 스타트업 활성화에 1000억 원, 1800억 원은 재투자해 5년간 총 5000억 원을 콘텐츠 산업 생태계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SK가 출자하기로 한 1500억 원은 지난 8년 동안 브로드밴드가 콘텐츠에 출자한 금액(365억 원)의 4.1배에 달하는 규모이고, 민간 주도형 펀드로서는 정부가 올해 콘텐츠에 조성하겠다고 밝힌 모태펀드 규모(4000억 원)에 육박한다.
KTB네트워크에서 콘텐츠 투자를 맡는 이승호 상무는 “국내 콘텐츠 산업은 여러 제약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투자의 54%가 영화에 집중돼 문제”라면서 “3200억 펀드는 최근 콘텐츠 펀드 중 가장 큰 규모로 게임이나 뉴미디어 등 중소 제작사들에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합병 무산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콘텐츠 투자 계획도 물 건너갔다. SK 관계자는 “합병 이후 계획했던 콘텐츠 투자나 케이블(HFC)망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SK브로브밴드는 소위 ‘윤석암(SK브로드밴드 미디어사업부문장) 사단’이라 불리는 전문가들을 영입해 콘텐츠 투자·기획을 맡는 별도 팀을 만들었는데 합병 지연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더니 해체될 위기다.
지난해 유료방송 합산규제 점유율을 전국가입자 기준(3분의 1초과금지)으로 정한 미래부와 다른 것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했다는 지적과 함께, 공정위 기준대로라면 앞으로 전국 사업을 하는 통신사(IPTV사)는 지역기반 케이블 회사를 인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SK텔레콤은 물론 LG유플러스도 CJ헬로비전은 물론 딜라이브(옛 씨앤앰), 현대HCN 등을 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IPTV와 SO의 겸영을 제한하는 ‘통합방송법’ 통과이후 합병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내에 케이블 업계의 구조조정은 쉽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내거나 공정위에 건의문을 내는 일을 논의하고 있다. 케이블TV 관계자는 “규모의 한계와 지역사업자의 한계로 가입자와 매출이 줄고 있는데 이번 인수합병 불허로 자구적인 구조개편 추진이 어려워졌다”며 “갈수록 가입자당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통신3사의 IPTV 가입자 수(1406만 명)는 케이블TV 가입자 수(1380만 명)를 넘었다. 3개에 불과한 IPTV회사 가입자가 92개 케이블TV(2015년 방송시장실태조사보고서 기준)업체 가입자수를 넘어선 것이다. 지역SO들은 디지털전환 대신 ‘8VSB’를 도입해 월 3000원에서 월 4500원으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주문형비디오(VOD)가 안 되는 8VSB로 IPTV와 결합상품의 공세를 어떻게 버틸지 우려된다. 미디어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 케이블TV업계 전반의 새판짜기가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