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국’ 인텔을 이끌었던 앤디 그로브가 지난 1996년 남긴 이 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경영 철학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1987년 인텔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후 유독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 환경에서 1등 경쟁력을 유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그렇게 1990년대 이후 ‘윈텔(윈도우+인텔) 시대’를 열었다.
그로브가 말한 ‘편집증’은 일반 병리학적인 의미의 편집증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가들이 끊임없이 미래 위협에 대비하고 성공한 순간이 오히려 가장 큰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는 뜻이다.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더 의미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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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인텔 이사회에서 사임한 립부 탄 전 케이던스 CEO 소식을 전하면서 “탄 이사가 사임한 것은 인텔의 위험회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문화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탄 이사는 세계 3대 전자설계자동화(EDA) 업체로 꼽히는 케이던스 회장 출신의 반도체 베테랑이다.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약 2년 전 이사회에 합류했고 지난해 10월 제조 운영 분야까지 맡으며 중추 역할을 했는데, 지난 22일 갑자기 퇴사했다.
인텔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완전히 뒤처지면서 최근 인력 감축 계획까지 내놓았다. 전체 직원 12만5300명 중 15%가량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탄 이사는 반도체 경쟁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중간 관리자들을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회사 측과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의 전직 임원들은 “인텔에 그저 안주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며 “지금은 과거 그로브의 경영 방식과 거리가 멀다”고 전했다.
인텔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졸면 죽는다’는 냉혹한 산업계를 새삼 대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인텔의 사례는 경영 환경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시기에 기업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