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공장 참사]"안전교육은 고작 1시간"…외노자, 산재 사각지대

사망자 대다수 외국인노동자로 드러나
안전교육 부족이 피해 키운 원인으로 꼽혀
"일터 안전 강화할 조치·인식 전환 필요"
  • 등록 2024-06-25 오후 4:20:18

    수정 2024-06-25 오후 7:03:19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24일 경기도 화성시의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졌다. 희생자의 대다수는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외국인직원들로, 건물 구조와 안전수칙에 낯선 점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현장을 본 외국인노동자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위험한 일터를 비판했다.

지난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 화재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이송하고 있다. 2024.6.24 (사진=연합뉴스)


희생자 대다수가 외국인…“안전교육 없는 현장 투입 비일비재”

25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전일 오전 10시 31분 화성시 서신면 소재의 리튬 일차전지 제조공장 3동 2층에서 발생한 불로 총 23명이 숨졌다. 이번 희생자 중 한국인은 5명, 나머지는 중국인 17명과 라오스인 1명으로 파악됐다.

소방 당국은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를 통해 희생자들이 화재 초기에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건물 안으로 대피하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리튬 배터리는 불에 탈 때 산소와 수소 등 가연성 가스를 다량 분출해 물이나 분말·질식 소화기로는 불길을 잡기 어렵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화재 당일 언론 브리핑에서 “(노동자들이) 2층 출입구 앞쪽으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가 많이 줄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분들이 놀라서 막혀 있는 (작업실) 안쪽으로 대피했다”며 “외국인노동자 중에는 용역회사에서 필요할 때 파견받는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공장 구조를 몰라서 피해가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참사를 지켜 본 외국인노동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팔인 디카(40)씨는 2013년 11월 경기 화성시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왼쪽 팔을 다쳤다. 고온의 기계를 작동시키다가 심한 화상을 입은 그는 지난달 15번째 수술을 받았다. 디카씨는 “일하러 가면 안전교육이 있지만 1시간 정도만 받고 바로 일해야 했다. 어제도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도망쳤는데 비상구가 없어서 죽지 않았느냐”며 “사고를 막을 교육과 안전시설이 너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안성시에 사는 방글라데시인 아지트(39)씨도 “2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가면 안전교육이 없고 있어도 언어 문제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며 “(희생자들은) 처음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노자 산재 5년 새 25.9% 증가…“사고예방 책임 강화해야”

국내 외국인노동자들의 우려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머문 외국인 노동자는 약 92만명으로, 5년 전(약 83만명)보다 10.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들의 산업재해 신청은 9543건으로 5년 전(7581건)보다 25.9% 올랐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외국노동자 증가율보다 2배 넘게 높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은 “(화성 공장은) 리튬 배터리와 가연성 물질들이 입구에 쌓여 있었지만 이쪽 비상구로 뛰어가야 살 수 있었다”며 “근로자들이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것은 비상 시 대피 훈련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문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번 사고를 리튬배터리의 특징과 진화 방법을 학습하고, 안전교육과 관련 제도를 구축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그동안 한국은 내국인이 꺼리는, 위험한 직업에 외국인력을 투입할 뿐 일터를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일터가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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