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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6일 미국 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미국 측 문서 사본 21건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21건 문서 가운데에는 1980년 5월 26일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이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를 면담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시 최 실장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이희성) 계엄사령관처럼 차분하고 책임감 있는 이들을 포함한 다수의 군 지휘관들은 광주 상황이 더 악화되도록 둬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현장 지휘관인 소준열 중장에게 도시 재진입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으며, 그는 실제 진입 전 서울에 통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민간인과 일부 간부들은 애초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사전 통보한 뒤 낮에 재진입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 방식이 저항 강도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사전 발표 없이 군사행동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계엄군 재진입 결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 국무부가 1989년 광주특위에 보낸 답변서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바 있다. 당시 미국은 광주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식으로 이를 묵인했다. 이같은 내용이 다시 한 번 미 국무부 외교문서를 통해 재차 확인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전 사령관을 포함한 신군부 측은 미국에 이번 12·12 사태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며 정당성을 입증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1980년 5월 22일 국무부에 보낸 상황보고에는 광주에서 계엄군과 지역 시민위원회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위원회에는 김대중과 가까운 인사들도 포함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 사령관은 글라이스틴 대사와의 면담에서 본인은 정치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발전 계획을 지지한다면서 군부대 동원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정승화 참모총장 측 저항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했다.
신군부의 실세이자 미국통인 김 소장 역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12·12사태의 불가피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는 고질적인 부패, 비전문성 등으로 오염된 군 조직을 쇄신할 기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문서에는 “글라이스틴 대사는 총리로 하여금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신군부 세력에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다만, 총리가 그럴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1980년 5월 22일 국무부에 보낸 상황보고에는 광주에서 계엄군과 지역 시민위원회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위원회에는 김대중과 가까운 인사들도 포함됐다고 적혀있다. 협상과 관련해 계엄사령관은 김대중 석방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not negotiable)”라고 밝혔다.
이들 문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