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소방관을 위한 119는 없다

  • 등록 2015-11-09 오후 4:27:15

    수정 2015-11-09 오후 4:27:15

[이데일리 e뉴스팀]

5 : 30 나는 소방관이다 / 올해로 3년 차다. 서울 관악구 관악소방서에서 근무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보니 출근 거리가 멀어 기상시간이 이르다. 오전 5시 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새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계속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8 : 40 출동훈련을 겸한교대식이 시작됐다 / 구조장비들이 실려 있는 구조차량에 올라 방화복으로 갈아 입는다. 2분내로 9.8kg짜리 공기통을 포함한 20kg의 방화복 착용을 완료해야 한다. 10여분 동안 장비 점검을 끝내면 야간 당직자는 퇴근한다. 이제부터는 대기다.이제부터는 대기다소방서에서는 근무시간 중에 커피를 마시는 대원들을 보기 힘들다. 커피를 마시면 자주 소변을 보게 돼 출동벨이 울렸을 때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근무 중에는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

10 : 00 새끼 들고양이 구조 / 서림동에서 들고양이가 자기 집 주차장에 새끼를 낳은 것을 발견했다며 치워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런 민원 때문에 긴급한 인명구조 출동이 늦어질까봐 걱정될 때가 많다. 하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항의가 이어지기 때문에 나가야 한다. 어미고양이가 찾을 수 있도록 새끼고양이들을 상자에 담아 잘 보이는 곳에 내놓았다.

11 : 30 점심시간은 15분/ 각자 식사가 끝나면 바로 복귀다. 다른 동료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매너’가 소방서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옆자리에서 식사 중이던 구급대 대원은 구급대 출동벨이 울리자 숟가락을 던지고 뛰어 나갔다. 흔히 겪는 일이다.식당 아주머니가 담담한 표정으로 식판을 치운다.

14 : 19 관악구 봉천동에서 화재 발생 /출동벨이 울리자마자 구조차량으로 달려갔다. 화재 골든타임은 5분, 1분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차량 승차 후 방화복으로 갈아 입는다. 팀 막내인 나는 출동 중 서면으로 상황보고를 쓴다. “칙~칙 봉천동 721 번지” 대장님의 무전기 소리를 듣고 출동시간, 화재 발생 장소, 도착시간을 상황판에 적는다.

14 : 22 화재현장에 도착 / 현장은 동네 주민들로 북적였다. 집주인이 가스불을 켠 채 냄비를 올려놓고 외출해 발생한 화재였다. 골목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지만 동네 주민이 일찍 발견해 신고한 덕에 불은 번지지 않고 끝났다. 헛걸음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큰 불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돌아오는 차안을 채웠다.

15 : 33 다시 출동벨이 울렸다 / 혼자 사는 74세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딸의 신고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을 열자 할아버지는 아파트 현관 앞에 쓰러져 계셨다. 밖에서 기다리던 경찰에게 사건을 인계했다. 사인 확인은 경찰 몫이다. 우리 일은 끝났다.돌아오는 차량 안은 적막했다. 소방서로 돌아오자 한 선배는 체력단련실로 올라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가 운동 밖에 더 있나? 땀 흘리고 잊어야지”“사망사고 발생했으니 이번 달에도 다들 보건소에 가야겠네. 얘기하다보면 다시 생각나니까 더 스트레스 받는데 그걸 왜 모르나”구조작업 중 시신을 목격한 대원은 의무적으로 2시간씩 보건소에서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

17 : 30 오늘 밤 당직인 구조대 2팀 도착 / 대장님은 2팀 대장님과 새로 도입하는 구조차량 문제로 얘기를 나눴다. 나는 2팀에 주간 상황보고를 했다. 10분 뒤 교대식이 시작되자 차량 사이렌 소리가 다시 한번 소방서를 가득 채웠다. 교대식이 끝난 뒤 나는 물을 한 컵 가득 부어 들이켰다. 11월 9일 오늘은 소방의 날이다.

▶ 관련기사 ◀
☞ [나는 소방관이다]"출동벨 대응 못할까봐..근무중엔 커피 안마셔요"
☞ [나는 소방관이다]"다치면 상여금 삭감"…119는 아파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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