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전안법 제정 취지는 소비자의 안전 강화였지만 적용범위가 과도해지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법 제정 과정에서 소상공인 소규모 유통업체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고, 행정편의적인 낡은 규제 방식을 답습하면서 세계를 무대로 소량 생산하는 미래 한류 산업을 제한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소상공인들과 소규모 유통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비용 상승이다. 취급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품목별로 KC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건당 20만~30만원의 비용이 든다.
검사 인력, 설비 등 자체 인증역량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업체는 대행기관을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해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이로 인한 생산단가 상승은 물론 소비 심리 위축과 경기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동대문도매시장에서 의류제조 도매업을 하고 있는 박중현 소상공인연합회 전안법 대책위 회장은 “전안법이 통과되면 1000원짜리 양말에도 KC마크 인증을 받아야 한다”며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뿐만 아니고 그 다음에 더 큰 문제는 새롭게 장사에 진입하려는 청년창업자들이 많이 줄어들고, 의류 같은 경우 원단, 봉제, 부자재시장까지 연쇄적으로 위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매업체의 경우, 최대 수천만원에 달하는 인증 비용 부담 외에도 인증에 걸리는 시간도 감당하기 어렵다. 수 십일이 걸릴 수도 있는 인증을 기다려야 하는데, 유행에 민감하고 회전 속도가 빠른 업계와는 괴리가 있다.
망원시장에서 의류판매를 하는 정모씨는“제조업자들의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면서 “경기가 좋지 않은데 소비자들의 발길이 더욱 줄어들것”을 우려했다.
한 염색업체 종사자는 “품목마다 인증을 받으려면 매달 수백만원이 추가로 든다”면서 “난데없는 비용 부담으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들은 다 문닫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또 “나이 많은 상인들은 KC인증에 대해 얘기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과태료만 최소 30만원~최대 500만원 수준이라는데, 1년을 유예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증기관만 ‘배 불렀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 20개 정도 민간 인증기관 대부분 산자부 공무원 출신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박중현 전안법 위원장은 “전안법은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생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법”이라며 “700만 소상공인을 죽이는 원안의 부활을 막기 위해 연내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한편 내년 초부터 KC인증마크를 달지 않았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받게 된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연내 이 법안에 대한 개정안을 일단 통과시켜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야 갈등으로 개정안은 표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