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마비 사태를 맞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조선왕조실록의 보관 예를 들어 이 같이 질타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은 전국 각지에 실록을 분산해서 관리하면서 전란의 위기를 거치면서도 지켜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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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한양 춘추관에 1부를 보관하고 나머지 3부는 충북 청주와 전북 전주, 경북 성주 등의 사고에 나눠 보관했다. 중종 때인 1538년 성주 사고에 불이 나서 실록 일부가 전소됐는데 다른 사고에 ‘백업’이 돼 있었기 때문에 이를 필사해 불탄 실록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후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는 인적이 드문 산자락에 마련됐다. 춘추관과 함께 마니산·오대산·태백산·묘향산에 사고를 마련했는데, 이후 묘향산 사고본은 전북 적상산으로, 마니산 사고본은 강화 정족산으로 이전했다.
조선시대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한 번 전소된 실록을 다시 복원하는 데 꽤 큰 비용이 들었다. 사관이 처음 쓴 초본은 물로 먹을 씻어내 종이를 재활용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조선왕조는 실록을 4~5부 유지하는 공을 들였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오대산 사고본이 도쿄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는데 간토 대지진 때 다시 소실됐다. 예상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보관에 위협을 받았던 셈이다.
이 같은 노력 속에 조선왕조실록은 대한민국의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일본, 중국, 베트남 등에도 실록이 편찬됐으나 원본은 모두 소실됐고 사본들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는 데이터의 다양화라는 기본 원칙도 지키지 못해 나흘이 지나도록 완전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카오는 오는 2023년 안산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 안에 첫 데이터센터를 짓고 2024년 제주와 서울 등에 2~3번째 데이터센터 확보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