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을 지낸 원로들도 이날 여야를 향해 대화의 복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여야는 선거제 개편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 개편 방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아울러 이날도 현재 정치권의 문제가 서로의 탓이라고 설전을 벌이면서 원로들의 조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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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제7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오늘의 국가과제는 협치와 분권의 제도화”라고 강조하면서 개헌을 언급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등 내용이 담긴 최소한의 개헌을, 내년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이뤄내자는 게 골자다.
김 의장이 개헌의 범위를 최소화한 이유에 대해 “개헌 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개헌 이슈가 내년 총선에서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야가 모두 찬성하고 대통령과 국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제만 담았다는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국정 구상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현행 5년 단임제는 장기 집권의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개헌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김 의장의 판단이다. 또한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는 국회가 복수의 총리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후보 중 한 명을 임명하는 제도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책임총리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축식에 참석한 정대철 헌정회장도 “헌법은 국가가 지향해야 할 정신과 함께 해야 하고, 민주화를 이룩한 이 시대 국민들의 요구를 통찰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헌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헌법의 안정기인 이 시점이 바로 새로운 시대 정신에 부응하는 헌법 개정을 할 적기”라고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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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 의장이 던진 또 하나의 의제는 선거제 개편이다. 앞서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19년 만에 전원위원회를 열고 공론조사까지 진행했지만, 여야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자 이에 대한 속도를 내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김 의장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며 “전원위 등을 통해 승자독식과 극한 대립의 선거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도 이뤄냈기 때문에, 여야가 최단 시간 내에 협상을 마무리해 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이처럼 팽팽한 여야의 극한 대립에 대해 정치 원로들도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냈다.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과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주도하는 ‘삼월회’는 이날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정대철 헌정회장, 김원기·임채정·김형오·박희태·강창희·정의화·정세균·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전직 정치원로들이 참여한다.
김형오 전 의장은 모임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모임에서 대체적으로 공감한 것은 ‘우리는 한국 정치의 복원을 강력히 염원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회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를 위해 여야간 대화가 최우선이라고 얘기했다”며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논의됐고, 기회가 된다면 이 뜻을 여야 지도부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정치권에선 여야의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상대 진영’이라는 남탓 공방이 이어지면서 정치 원로들의 조언이 무색해졌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제헌절을 기념한 논평에서 “국회에서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로 헌법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의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 역시 제헌절 기념 서면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서 ‘무분별한 시행령 통치’와 ‘법안 거부권 행사’, ‘국회에 대한 국무위원의 위압적 태도’ 등으로 3권 분립이란 헌법 정신인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며 “여기에 윤석열 정권은 언론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억압하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옥죄는 실정”이라고 여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