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와 트럼프, ‘US스틸 매각 반대’ 한목소리 내는 이유

전미철강노조 "고용 안정성 우려" 반대
경합주 겸 러스트벨트, 노조 지지 확보 필수
외신 "CFIUS 국가 안보 영향 판단 중요할듯"
  • 등록 2024-09-03 오후 3:25:55

    수정 2024-09-03 오후 7:05:06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US스틸은 미국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여야 한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미 노동절인 2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선거 유세에서 이처럼 말했다. 피츠버그는 미국 철강 제조업 상징인 US스틸의 본사가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US스틸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 기업으로, 강력한 미 철강 회사는 국가를 위해 필수적”이라면서 “언제나 미 철강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겠다”고 덧붙였다.

2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찾은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사진=AFP)
해리스 부통령이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US스틸 매각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뜻을 함께 한 것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를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합주 표심 잡아라…정치적 셈법

122년 역사의 US스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스틸을 모태로 설립, ‘미국 철강 산업’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런 US스틸을 조강량(강철 생산량)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이 지난해 12월 149억달러(20조17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US스틸 인수로 몸집을 늘려 중국 경쟁업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겠다는 것이 일본제철의 목표다. US스틸 주주들도 이를 찬성했으나 미 철강노조와 정치권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전미철강노조(USW)는 일본제철이 노조가 대표하는 공장들을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약속을 하지 않았고 기존 계약 조건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US스틸의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제철은 USW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2026년까지 정리해고와 공장 폐쇄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USW는 향후 계획에 대한 세부 정보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US스틸 본사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대통령 선거인단이 19명 배정돼 경합주 중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주요 격전지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날을 포함해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거 운동을 시작한 한달새 수차례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한 이유기도 하다.

또한 펜실베이니아는 과거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던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 속한다.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선 노조의 지지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US스틸 매각을 반대하자 약 1주일 후 USW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 후보 모두 US스틸 매각을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원인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오하이오주의 J.D. 밴스 상원의원 등 러스트벨트 기반 정치인들 역시 표심을 의식해 US스틸 매각 반대에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 안보 위협” 우려 시선도

철강 산업이 국가 방위와 인프라 구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반대 명분이 되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셰로드 브라운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일본제철과 중국 철강업계가 긴밀한 사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를 의식하듯 일본제철은 중국 바오산철강와의 합작회사인 보강일철자동차강판(BNA) 지분을 전부 매각하고 이달 합작 사업 계약 만료와 해당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막후에선 미국 철강기업 클리브랜드 클리프가 US스틸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지난해 클리브랜드 클리프는 US스틸을 일본제철이 제시한 것보다 더 낮은 가격에 인수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클리브랜드 클리프의 로렌코 곤칼베스 CEO는 US스틸과 일본제철의 거래가 무산되면 다시 US스틸 인수전에 뛰어들 의사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일본제철(사진=AFP)
CFIUS 판단, US스틸 매각 좌우하나

그럼에도 US스틸은 일본제철과의 거래 진행을 고수하고 있다. US스틸은 최근 성명을 통해 “가까운 동맹국인 일본의 오랜 대미 투자자인 일본제철과의 파트너십은 미국 철강 산업과 일자리, 공급망을 강화하고 중국에 대한 미국 철강 산업의 경쟁력과 회복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제철 역시 트럼프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역임한 마이크 폼페이오를 고문으로 영입하고, 지난달 29일 US스틸의 제철소에 대한 13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인수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US스틸 매각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있다. 외신들은 CFIUS의 결정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성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CFIUS는 미 정부에 US스틸 매각 승인을 거부하도록 권할 수 있으나 문제 해결안을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또 만약 CFIUS가 US스틸 매각에 따른 국가 안보 위협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거래를 무산시키긴 어려울 것으로 컨설턴트와 법조인들은 진단했다.

US스틸 인수와 관련된 정치적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선 USW를 우선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가 안보와 비즈니스정책 컨설팅 회사인 캡스톤의 전무이사 엘레나 맥거번은 “일본제철과 철강 노동자들이 합의에 도달하는 순간 모든 반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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