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리드 판결서, 전담인력 없인 공염불…법원 인식개선 관건"

연구참여 이수연 변호사 "제도 마련이 끝 아냐"
"발달장애인 이해하는 전문인력·예산 확보 시급"
"사법부, 장애인 단편적 이해…인권적 관점 필요"
  • 등록 2024-12-23 오후 4:00:35

    수정 2024-12-23 오후 4:00:3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법원이 장애인 등 정보약자를 위한 ‘쉬운(이지리드·easy-read) 판결서’ 제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해당 정책연구에 참여했던 이수연(사진·변호사시험 8회) 변호사(법조공익모임 나우)는 “이번 제도가 단순히 ‘우리가 이런 걸 마련했다’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는 장애인 등 정보약자를 위한 ‘이지리드 판결서’ 제도화 작업에 착수했다. 2025~2029년 중기사업계획에 이지리드 판결서 관련 예산을 반영해 2026년 예산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각하’ 대신 “이 소송은 받아주지 않는다”, ‘기각’ 대신 “원고가 원하는대로 해줄 수 없다” 등 쉬운 표현과 그림으로 법률 용어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변호사는 2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지리드 판결서 도입은) 법원이 발달장애를 가진 국민들의 특성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시작점”이라며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판결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노인 등으로도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소송 현장에서 장애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이 당사자인 사건에서 절차 진행 상황이나 법정에서의 판사, 상대방, 상대방 변호사의 발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며 “매 변론기일이 끝난 후 소송대리인들이 당사자들에게 오늘 왜 여기에 왔고, 판사는 어떤 이야기를 했으며, 상대방 변호사는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물리적 접근성도 여전히 문제다. 이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2019년부터 법원과 검찰청의 장애인 편의시설을 실태조사하고 있는데, 관련법이 있어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며 “경사로가 있어도 너무 가파르거나 휠체어 회전이 어렵고, 휠체어 이용자용 낮은 책상도 실제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지리드 판결서 도입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전담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지리드, 발달장애인의 특성 등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은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이와 관련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제도와 시스템 도입을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와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특히 그는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시행된 이후에도 이 법을 잘 모르는 판사들이 많았고, 같은 해 가입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도 헌법 제6조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데도 그 기본이념과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결국 그 제도를 실천하는 것은 ‘사람’”이라며 “사법제도 안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인권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장애인의 사법접근권이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

최근 잇따른 법원의 장애인 권리 보장 판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1층이 있는 삶’ 판결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했다”며 “법원이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기적 과제도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사법부가 그동안 장애인을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위주로 단편적으로만 이해해왔다”며 “장애는 다양하며, 같은 유형의 장애라도 그 정도가 다르다.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의견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수연 변호사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이지리드 판결서 작성을 위한 시각 자료 개발 연구’ 정책연구용역을 통해 개발된 시각자료 예시 (자료: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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