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낀 역아 살려낸 소방관.. 그가 나서면 기적이 일어났다[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⑤

부산사하소방서 민요한 소방관, 2021년 4월 6일 새벽 역아 출산 현장 출동
母 골반에 머리 걸린 태아 무사 출산 후 CPR로 기적적 구명
구급 대원임에도 구조대 도착 전 영하 11도 바다 뛰어들어 60대 익수자 구조도
화재대응능력 자격 이어 인명구조사 자격 취득도 준비 중..."환자는 가족이다"
  • 등록 2023-12-06 오후 4:39:42

    수정 2023-12-06 오후 5:01:53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편집자 주]‘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 가량 숨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민요한 소방관이 지난 2021년 4월 6일 역아 출산 직후 응급 처치에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민요한 소방관.
지난 2021년 4월 6일 오전 5시께. 부산사하소방서 괴정·감천 119안전센터에 동시에 다중 출동 콜이 울렸다. 응급이란 얘기였다. 민요한 소방관(34)은 구급차로 이동 중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마음의 끈을 단단히 묶었다.

임신부가 출산을 시작했는데 발부터 나왔다는 신고였다. 보통 출산 시 크고 무거운 머리부터 나와야 정상이었다. 다리부터 나오는 역아(逆兒)는 자연 분만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머리가 산도(産道·아이를 낳을 때 태아가 지나는 통로)에 끼어 뇌 손상을 입거나 탯줄이 아이의 목을 감싸게 돼 위험했다.

민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산모가 이미 태아의 몸통까지 출산을 한 상태였다. 태아의 머리가 골반 사이에 끼어 몸통과 다리의 색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역아일 경우 현장 출산이 아닌 병원으로의 신속 이송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이송하더라도 10분은 걸렸다. 민 소방관은 직감적으로 이 10분의 시간도 위태롭다고 판단했다. 현장 출산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 안에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출산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때 기적적으로 아이의 머리까지 온전히 세상에 나왔다.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가슴에 바싹 귀를 가져다 댔을 때야 비로소 새근새근 미약한 호흡이 느껴졌다. 제발 살아만 달라는 마음으로 구급차 이송 중에 두 개의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다. 아이도 민 소방관의 염원에 응답했는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아이에게 새 세상을 안긴 그날 아침이 더욱 빛났음은 물론이다.
민요한 소방관이 지난 2018년 1월 10일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익수자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민요한 소방관 제공.
민 소방관에게 기억에 남는 출동은 또 있다. 지난 2018년 1월 10일의 일이다. 해운대해수욕장 60대 여성 익수자 구조 요청 건이었다. 민 소방관은 당시 해운대소방서 중동119안전센터에 근무 중이었다.

민 소방관은 간호사 출신의 구급 대원이다. 익수자 구조 출동의 경우 익수자를 물 밖으로 꺼내는 일은 구조 대원이, 이후 CPR 등 응급 처치는 구급 대원의 역할이다. 그러나 민 소방관을 포함한 구급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구조 대원들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민 소방관이 현장에서 본 것은 한 경찰관이 구명환을 붙들고 익수자에게 접근했음에도 어쩔 줄 몰라 하며 같이 바닷속에 떠 있는 상황뿐이었다. 그 경찰관이 익수자를 밖으로 끌어내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민 소방관은 신발을 벗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민 소방관이 평소 3km 정도는 가볍게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수영을 즐겨했고 해병대 시절부터 인명 구조 영법에 관심이 있어 꾸준히 연습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온이 영하 11도에 이르는 강추위였다. 차디찬 바닷물이 살을 에는 듯 했다. 환자는 구조 당시 의식은 없었지만 다행히 맥은 뛰고 있었다. 응급 처치를 시행하고 인제대 해운대백병원으로 신속 이송했고 결국 익수자는 걸어서 퇴원했다.

민 소방관은 말했다. “수영에 자신이 있었지만 영하 11도의 겨울 바다가 위험한 것은 잘 알고 있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 상황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익수자를 앞에 두고 구조 대원들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내가 위험해 졌을 때 나를 도우러 올 동료들을 믿고 뛰어들었다”고. 민 소방관은 본업인 구급 업무가 아닌 구조 업무로 한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에 두고두고 보람을 느꼈다.

민 소방관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다 간호사 특채를 통해 소방관이 됐지만 다른 업무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이에 대해 “국민들은 소방관을 바라볼 때 소방 업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직관적으로 제복을 입은 한 명의 소방관으로만 인식한다. 우리 소방관들이 본인의 직무뿐 아니라 다른 직무 역시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구급 대원이면서 화재 진압 업무도 할 수 있는 화재대응능력 2급 소지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인명구조사 2급 자격 취득을 위해 내년에 있을 실기시험도 준비 중이다. 민 소방관이 내년에 인명구조사 자격마저 취득한다면 민 소방관은 현장 소방관의 세 가지 직무인 구급·구조·화재 진압 업무 모두에 투입될 수 있는 전천후 소방관이 되는 셈이다. 보통 본인의 주업무 외에 추가로 타 분야 자격증을 한 가지 더 취득하는 경우는 흔해도 모든 업무에 걸쳐 자격을 갖고 있는 소방관은 드물다.

“환자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대하자”를 모토로 삼고 최선을 다한다는 민 소방관도 그러나 가끔은 힘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취자들의 이유 없는 폭언 및 폭행 때문이다.

민요한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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