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여섯 명의 딸을 키우는 라트리나 베글리는 매일 집 근처에 있는 1달러 상점 ‘패밀리달러’에서 장을 봤다. 미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보조적 영양지원 프로그램’(SNAP, 옛 푸드 스탬프)을 이용해 핫포켓이나 냉동 피자, 우유 등을 구매해왔다. 그러나 패밀리 달러가 문을 닫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이 더 쪼들리게 됐다. 집 근처 편의점이나 소매점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생필품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하는 내슈빌 지역은 흑인이 많고, 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낮아 신선하고 저렴한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미 농무부는 이 지역을 ‘쇼핑 난민 지역’으로 지정했다.
| 지난 8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패밀리달러 매장에서 한 가족이 쇼핑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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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패밀리달러 모회사인 달러트리는 수익성 개선 전략의 하나로 최근 패밀리달러 매장 8200개 중 1000개 매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베글리씨가 평소 이용하던 매장도 그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연방정부의 SNAP 예산이 삭감되면서 패밀리달러 매출이 감소한 여파다. 소매 조사기관 HSA 컨설팅의 분석에 따르면 패밀리달러에서 쇼핑 100달러당 11달러는 SNAP 이용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내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패밀리달러처럼 SNAP 사용이 가능한 매장 폐점이 늘어나는 건 빈곤층에게 큰 타격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식료품을 기존보다 비싼 값에 사야하는 만큼 주머니 사정을 더 팍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SNAP 이용 가능 매장의 위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문을 닫은 1000개에 가까운 패밀리달러의 대부분은 월마트 등 다른 저가형 소매업체와 경쟁하는 지역에 있었다”면서 “이 중 15개 매장은 특히 빈곤율이 높고 1.6km 이내 편의점이나 약국밖에 없는 도시 근교에 입점해 있었다”고 짚었다. 이는 저소득층이 퇴근길 부담 없이 영영 보충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해 장 보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달러샵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편의점이나 드럭스토어에서 식료품을 사면서 구매 품목 수도 줄어들게 됐다.
달러트리 홍보 담당자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패밀리달러에서 식료품을 주문하면 SNAP을 이용할 수 있다”며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체감은 다르다. 앱에서 판매하는 식료품 가격은 매장보다 더 비싼 데다, 배송과 서비스 요금 지불에는 SNAP를 적용할 수 없어서다.
베글리는 “나와 가족에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퇴근길에 어딘가에 들르지 못하면 저녁에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어머니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버티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식료품 보급소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지금보다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슈빌에서 저소득층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비영리단체인 내슈빌 푸드 프로젝트의 C.J. 센텔 최고경영자(CEO)는 “1달러샵 폐점이 늘어나면 식료품 조달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패밀리달러 2곳이 문을 닫은 내슈빌 북부에는 몇 개의 잡화점 등이 남아 있지만, 이곳에서는 우유조차 팔지 않고 식료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드물어 식료품에 대한 접근성이 지금보다 더 악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패밀리달러는 향후 6개월 동안 약 600개의 패밀리달러 매장을 폐쇄하고, 임대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370개의 매장을 추가로 폐쇄할 것이라고 지난 3월 밝혔다. 증권 신고서에 따르면 2월 초부터 8월 초까지 657개의 패밀리달러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