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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 자리잡은 이건희컬렉션 1488점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한국 근현대미술작가 238명의 1369점, 해외 근대작가 8명의 119점이다. 면면이 가진 장르적 성향도 다채롭다.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사진과 영상이 8점이다.
7일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의 소장 기증미술품을 세부적으로 공개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들을 한마디로 “동서고금을 망라한 다양성”이라고 정리했다. 그러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 1만 점 시대에 진입하게 돼 ‘행복관장’임을 실감한다”며 “생애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든 쾌거”란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이 회장 유족이 발표한 기증목록이 이건희컬렉션의 ‘거대한 양적 규모’를 세상에 알렸다면,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세부내용은 ‘비범한 질적 수준’으로 존재감을 확인케 했다.
‘양적 규모’ 넘어서는 희귀작·진귀작 퍼레이드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모습을 감췄던, 혹은 그간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희귀작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소 그림을 많이 그렸던 이중섭(1916∼1956)의 작품으로도 드문 ‘흰 소’(1953∼1954)가 대표적이다. 지금껏 5점 정도 전해진다는 그 ‘흰 소’ 중 한 점이 이건희컬렉션에 들어있었던 거다. 작품은 1972년 이중섭 개인전과 1975년 출판물에까진 등장했으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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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s)도 30년 넘게 잠적해 있던 작품. 김환기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큰 568㎝의 가로가 긴 그림으로, 항아리와 여인, 새와 사슴·꽃 등 김환기의 대표적 도상을 다 품고 있어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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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여성화가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인 ‘낙원’(1937), 단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한 점인 ‘사내아이’(1929) 등도 이름을 올렸다.
굳이 ‘희귀’가 아니라도 한국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줄줄이 이어진다. 김은호의 초기 채색화 정수를 보여주는 ‘간성’(1927)을 비롯해 김기창의 ‘군마도’(1955), 변관식의 ‘금강산그룡폭’(1960s), 박래현의 ‘여인A’(1942), 장욱진의 ‘공기놀이(11937), ‘소녀’(1939), ‘나룻배’(1951) 등이다.
이중섭 작품만 104점…내년 ‘특별 개인전’ 꾸려
한 작가의 연대기를 방불케 할 ‘작품 수’가 눈길을 끌기도 한다. 100점을 넘긴 이중섭이 가장 특별하다. ‘흰 소’와 ‘황소’(1950s)를 포함해 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등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모두 옮겨졌다. 100점을 넘긴 다른 작가는 ‘산의 화가’ 유영국으로 회화 20점, 판화 167점을 기증목록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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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덕수궁관 일부, 8월 서울관서 본격 대중 만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을 순차적으로 대중에 내보이는 계획을 세웠다. 당장 7월 덕수궁관에서 여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에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을 선뵌다. 이후 본격적인 공개는 8월 서울관에서 여는 ‘이건희컬렉션 1부: 근대명품’부터다. 이어 12월 ‘이건희컬렉션 2부: 해외거장’에 이어, 내년 3월에는 104점에 달하는 이중섭 작품만으로 ‘이건희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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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관장은 “이번 기증작으로 볼 때 한국 고미술부터 동시대 서양 현대미술까지 이건희컬렉션이 가진 광폭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며 “오랜 시간 열정과 전문성을 가미한 컬렉션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소장품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으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꼽은 윤 관장은 “김환기의 작품 중 가장 큰 대표작”이라며 “경매에 내놓으면 300억~400억원에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의 맹렬한 유치경쟁을 부르고 있는 ‘이건희 미술품 특별관 건립’과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특별관에 대해선 국립현대미술관이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