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선 한 번 영업점에 발을 들인 고객을 어떻게든 ISA에 가입시키기 위해 국세청에서 떼어야 하는 증빙서류를 대리로 발급해주겠다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 홈택스가 안 된다` 등의 잘못된 정보도 난무했다. 실제로 이날 홈택스 홈페이지에선 팝업창을 통해 이 서류를 안내하고 있었다. 영업점에 온 고객에게 서류 대리 발급을 유도해 반드시 ISA에 가입시키겠다는 의지다. 또 다른 영업점 직원은 “지금 예약만 하고 가라. 나중에 가입 안 하실까봐 그런다”고 말하기도 해 가입 유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느끼게 했다.
이데일리가 ISA판매 첫 날,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의 서울 명동 영업점을 돌아보며 ISA에 가입 또는 상담받은 결과 대다수 은행원들이 ISA상품 가입 건수에만 열을 올릴 뿐, 투자 성향에 맞게 어떤 상품을 가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제대로된 설명을 듣기 어려웠다. 심지어 한 은행 영업점에선 이미 비과세되는 해외 주식형 펀드를 과세가 되는 것처럼 ISA에 넣으라고 소개하는 등 ‘불완전판매’ 소지가 다분했다.
투자성향 확인은 요식행위일뿐..각 은행별로 상품 가입 강요에 급급
ISA계좌의 가장 큰 특징은 한 계좌에 여러가지 상품을 담을 수 있단 것이지만, 영업점 창구에선 이러한 특성은 무시됐다.
그러다보니 기자는 투자 성향보다 높은 고위험 상품에 가입했다. 어떤 상품을 담을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A은행 영업점 직원은 “복잡하게 여러 상품을 담지 말고 ELS(주가연계증권)만 넣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1개의 ELB상품과 3개의 ELS상품을 보여주고 ELS의 강점을 설명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자 투자성향 분석은 그 다음에 이뤄졌다. 기자는 예·적금 금리보다 높으면서 10% 정도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위험중립형’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ELS는 그보다 한 단계 위험이 높은 상품이었다. 그로 인해 기자는 투자성향보다 위험이 높은 상품을 ‘본인의 의지에 따라’ 가입했다는 부적합 동의서를 써야했다. 심지어 기자는 ELS투자가 처음이었다. ELS의 최소 가입금액은 500만원이지만, ISA에 넣는 ELS는 100만원으로 줄어든데다 수수료가 1%에서 0.7%로 감소한 것이 투자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수수료를 어떻게 떼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전화로 하겠다고 통지했다.
‘서민형 ISA’에 소홀..“7월부터 된다, 홈택스 안 된다”는 잘못 정보도
은행들은 서민형 ISA가입에 상당히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총급여 5000만원 미만의 근로자(종합소득금액 3500만원 이하)는 ISA의무 가입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고 비과세도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늘어난다. 다만 이를 적용받으려면 국세청에서 발급하는 ‘서민형 ISA가입용 소득확인증명서’가 필요하다. 영업점 직원은 “서류 가져오기 번거로우니 일반형에 가입했다가 나중에 서류 갖고와서 전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다. 홈택스에서 서류 발급이 가능한데도 한 은행에선 “국세청에서 서류 발급이 안 돼서 7월에야 가능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은행에선 “홈택스가 안 된다. 대리 발급으로 맡겨라”는 등등의 얘기도 나왔다.
ISA에 대해 가입 설명만 듣고 가입을 나중에 하겠다고 하는 기자에게 D은행 영업점 직원은 “일단 예약을 하고 가시면 어떠냐. 나중에 서류 작성 안 해도 되지 않느냐. 지금 만원도 없으시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다짜고짜 서류를 꺼내더니 서류 서명에 급급할 뿐 이 서류가 무엇인지 묻고 나서야 `투자성향 확인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ISA가 출시되기 전부터 은행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자동차, 해외여행상품권 등을 경품으로 내걸면서 과당 경쟁을 벌여왔다. 그 사이 금융소비자원에서 ‘ISA불매 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뚜껑을 열자 우려는 현실화됐다. 은행들은 ISA가입 건수 유치에만 함몰돼있단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