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칼럼] 신경영20년과 '골탕법'

  • 등록 2013-05-30 오후 6:14:56

    수정 2013-06-02 오후 5:13:53

[이데일리 남궁 덕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라”고 이건희 회장이 불호령을 내렸다.‘1등 삼성’의 화두가 던져진 ‘프랑크푸프트 선언’이다.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51세.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캠핀스키 호텔에서다.

그로부터 2년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경북 구미의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무서운 실체를 드러낸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자존심’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린 운동장에 2000여명의 임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육중한 해머를 든 직원들이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제품을 깨 부셨다. 산산 조각난 제품들은 뜨거운 화염속에 잿더미로 바뀌었다.이 회장의 지시로 500억원 어치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유명한 불량제품 ‘화형식’이다. 이날의 퍼포먼스 덕분에 구미 공장은 휴대폰 생산의 성소(聖所)로 거듭났다. 작년 삼성의 휴대폰시장 점유율은 30.4%로 애플 등 쟁쟁한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미국과 유럽의 가전 전시장 구석에서 때를 먹고 있던 삼성 TV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거듭났다.환골탈태한 결과다.

20년의 지극정성이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 삼성은 준비된 자만이 즐길 수 있는 시장 개화의 정점을 만끽하고 있다. 세상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삼성이 스마트폰이라는 융합의 아이콘을 훗날 휘어잡는 디딤돌이 됐다고 말하지만, 정작 삼성 경영진은 다음 ‘한방’이 뭔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다.다음 세대의 융합 아이콘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는 것. 시장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초접촉사회의 소비자들은 더 새로운 걸 주문하고 있는 탓이다.지금 1위가 언제 뒤집힐 지 모를 일이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선 삼성에게 예기치 않은 복병이 등장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정년연장법 등 이른바 ‘골탕법’ 리스크다. 골탕법은 신경영이 뚫고자 했던 미지의 두려움과 안주의 두려움보다 더 무섭다. 칼날을 겨누는 쪽이 도깨비 군단인 탓이다. 행정권이 남용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유해물질관리법은 유해물질과 관련해 환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기업 활동에 대해 정부에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기업인의 고발. “유해물질이 환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판단할 기준을 알려달다고 당국에 질의했는데 ‘특별한 기준이 없으니 기업 자체적으로 판단해 신고하라’는 답을 받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무시무시한 유해물질관리법은 가공할 무기를 더 장착했다.사업장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것.삼성전자를 겨냥했다는 개정 유해물질관리법은 당초 과징금을 매출의 50%로 발의했다가 10%를 거쳐 사업장 매출의 5%로 결론났다.여론에 따라 무 자르듯 과징금 규모가 줄어들었다.연매출 200조원의 삼성전자 앞에 이 비율을 곱해보자. 삼성전자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괴물이다.종전엔 과징금을 최대 3억원까지 물릴 수 있도록 했다.삼성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있는 중소기업들도 입이 나와있다. 기업들 사이에 환경법규는 ‘환장하고 경을 치는 법’이란 인식이 퍼져있다. ‘골탕법’이라고도 부른다.

불산사고가 났던 삼성전자 화성공장을 특별감독한 노동부는 향후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은 도급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하도급관행이 원청업체의 안전불감증을 키웠다고 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분야는 전문(하청)업체들이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다”며 “게다가 원청업체가 이런 일까지 다 하면 하청업체는 뭘 먹고 사느냐”고 혀를 찼다.골탕법은 누가 골탕을 먹는지 모르는 ‘도깨비법’다.신경영 20년의 성과가 골탕법에 묻혀 희석되고 있다.웃기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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