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아니냐"…고양 저유소화재 수사경찰, 이주노동자에 자백강요 정황

인권위 조사, 警 `거짓말` 123회 발언…진술거부권 침해
피의자 신상 공개 관련 사생활 비밀과 자유 침해
인권위, 경찰에 주의 및 재발방지 교육 권고
  • 등록 2019-05-20 오후 12:00:00

    수정 2019-05-20 오후 12:00:00

지난해 12월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 경찰수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최정규 변호사가 경찰 수사 절차와 결과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인 이주노동자에 대해 경찰의 자백 강요 정황이 있었다고 봤다.

인권위는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관이 이주노동자인 피의자 A씨에게 반복적으로 ‘거짓말 아니냐’고 하거나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20일 밝혔다.

또한 인권위는 A씨의 이름 일부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를 언론사에 공개해 신원이 주변에 드러나도록 한 것은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고양경찰서장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에게 해당 경찰관에 대한 주의 조치와 재발방지를 위한 직원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피의자신문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거짓말 하는 거 아닌가요?’라면서 진술을 강요했고, 언론에 A씨의 이름과 국적, 나이, 성별, 비자의 종류를 기재한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피해자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10월 8일 긴급체포 된 이후 28시간 50분 동안 총 네 차례의 피의자조사를 받았는데, 피의자신문조서 기록상 경찰관이 총 62회에 걸쳐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되묻거나 ‘거짓말하지 말라’ 혹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피의자신문의 영상녹화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123회에 걸쳐 ‘거짓말’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경찰관의 거짓말 발언이 A씨가 피의자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진술할 때나 피의자 진술 자체를 부정하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설사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피의자의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를 근거로 압박과 강요를 하는 것은 합리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경찰이 A씨의 신상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할 필요성이 없었다고 봤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지,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신상정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사가 개인의 신상정보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수사기관 스스로 공표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경찰관의 피의자 신상정보 등의 공개로 피해자 개인은 물론이고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무관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했다”며 “실화의 가능성에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해 안전관리 부실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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