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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전체의 70%에 육박하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이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되면서 기업이나 근로자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저조한 수익률로 매년 오르는 임금상승분을 감당하긴 턱없이 부족해 기업이 적립금을 제때 쌓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되고 있다. 통상임금 확대로 기업의 퇴직금 부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DB형 퇴직연금 수익 개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DB형 퇴직연금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정형 올인 DB형, 수익률 저조로 적립금 쌓지 못하는 악순환
15일 은행·보험·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DB형 가입자는 전체의 66%로 약 98조원 규모다. 이 중 97% 이상인 약 95조원이 원리금보장상품에 가입한 채 방치돼 있다. DB형은 연 평균 수익률이 1.63%로 확정기여형(DC)이나 개인형 퇴직금(IRP)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주된 이유는 퇴직 적립금을 책임자들이 회사별 1~2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담당자들이 대리나 과장급 직원으로 만에 하나 손실을 입을 경우 모든 책임을 떠안야 해 안정형인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체 임금체불액의 약 40%를 퇴직급여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퇴직급여 적립금을 쌓지 못한 사업장이 전체 DB형의 50.8%에 이른다. 이를 가입자로 기준으로 하면 적립금 충당을 하지 못한 비율은 30%수준으로 중소기업일 수록 적립을 제 때 못하고 있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심지어 공공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적립률이 4.2%에 불과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결산에서 시정요구를 받은 바 있다.
투자적립금 운용계획서(IPS) 도입 의무화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DB형에 가입한 기업들이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형 DB 가입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에 나선다면 퇴직연금 시장이 훨씬 커지고 평균 수익률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관련법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1년 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4일부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지만 최저임금제 등 현안이 많아 다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적립금 운용계획서를 작성토록 하면 기업들도 퇴직연금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의무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봤다. 김성일 소장은 “운용계획서 의무작성을 하더라도 퇴직금사업자들이 작성하도록 하지 말고 제3의 기관에 맡겨 운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DB형에 가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퇴직급여 적립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제재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DB에 가입한 사용자에게 퇴직급여 지급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준책임준비금의 80% 이상을 최소적립금으로 적립하도록 하지만, 적립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박정용 국회 입법조사관은 “퇴직연금제도 의무화가 실효성을 갖게 하려면 DB형의 최소적립금 확보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며 “이행하지 않을 경우 퇴직연금 미설정에 준하는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