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고 대규모 민사소송이 예고된 가운데 방송통신 분야 전문규제기관인 방통위가 “기술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민사소송의 중요한 증거자료로 인용돼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방통위는 19일 전체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지만 사건의 파문을 고려해 일단 좀 더 논의한 뒤 최대한 2주 내에 결정짓기로 했다.
하지만 상임위원들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인과관계가 아예 없지는 않다’는 입장을 보여, KT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
방통위는 통신 분야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규제하는 행정기구다. 상임위원 5명은 판사 역할을 하고, 방통위 사무국은 검사, KT는 피고인, KT측 법률대리인(김앤장)은 변호사 역할을 했다.
사무국은 KT의 요금조회 홈페이지(마이올레)와 포인트 조회 홈페이지(올레클럽 및 올레) 등을 조사한 결과, 정보통신망법 중 접근통제 및 암호화 기술 미비 등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이번 해킹 사건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오남석 이용자정책국장은 “해커가 (타인의 명세표 조회) 화면을 띄운 것 만으로 개인정보 유출로 본다”면서 “당장 금전적 이익을 얻지 않아도 화면을 찍어둔 걸 나중에 유통하면 이 역시 부당이득”이라고 말했다.
방통위원들 사이에서도 “법원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자”는 점을 강조한 허원제 부위원장 외에는, KT의 기술적 조치 미흡이 해킹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검찰이나 법원과 별개의 독자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최성준 위원장은 “해커가 마이올레 페이지에 들어와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불러오기 위해 차례차례 조회할 때 이를 탐지할 수 있을텐데 그런 기능이 없었는가?”라면서 “저는 알고 있는데 이런 기술을..”이라고 말했다.
김재홍 위원은 “방통위는 국내 최고의 디지털 분야 전문기구이니 독립적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행정처분이 (행정소송 이후) 패소해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니 정책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기주 위원은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라면서 인과관계 규명을 강조했고, 고삼석 위원은 “아직 KT는 어떤 고객에게 어떤 배상도 안 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쉬운 해킹툴로 했고, 해커가 시도한 다른 증권사 등은 뚫리지 않았으니 KT 책임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
KT 측 법률대리인인 김앤장의 김진한 변호사는 “심지어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도 해킹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은 없음에도, 우리나라는 기술적 관리적 보호조치 위반 시 행정처분을 명문화 한 이례적인 나라”라면서 “시행령 규정은 명백하고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 보상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유출 사고 관련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고객 보상은 판결 결과에 따라 진행할 일”이라고 부연했다.
지난 3월 체인지액션 변호사단이 개인정보유출 피해자 101명을 대리해 KT를 상대로 1인당 20만 원 씩 총 202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내는 등 이 사건의 민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방통위가 KT의 책임을 인정하면 민사소송이 더 잦아질 것으로 보여, KT 배상액은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 관련 기업들이 받았던 배상액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관련기사 ◀
☞ KT "980만 해킹사건 행정처분 안된다"...반박은 무엇?
☞ KT, 980만명 해킹 기술책임없나..방통위 격론, 다음주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