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 부회장은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선장으로서 넘어야 할 여러 고비를 헤쳐나가며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받았다. 승계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첫번째 관문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숙주로 꼽힐 때는 직접 고개숙여 사과에 나섰고 메르스 사태는 수습됐다. 올 들어 삼성전자 실적에 대한 비관론이 확대됐지만 ‘JY 웨이’로 정면 돌파해 3분기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는 삼성전자에 위기가 아닌 기회로 자리잡았다. 10여년간 진행된 반도체 치킨게임은 이미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전쟁의 승자라는 것은 이들의 기업실적에서 나타난다. D램 가격은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잠재력이 높은 모바일 D램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쾌속 성장한 데 이어 인도·동남아시아, 러시아와 중남미 등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프리미엄 고가폰 시장이 축소되면서 스마트폰 부문에서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했다. 하지만 반도체는 다르다. 수율이 개선되고 보다 집적도를 높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B2C 기업에서 B2B를 주축으로 한 모습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는 향후 삼성전자 주가에도 새로운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중국이 추격을 시작하고 마이크론이 공격적으로 대응하겠지만 이미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마트폰과 백색가전이 IoT(사물인터넷)로 연결되는 환경은 누가 봐도 백색가전보다는 반도체 제조사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의 밑그림을 JY가 그렸다면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