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월급이나 집값이 오른 것만 생각하는 화폐환상(화폐착각)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폐환상은 물가와 명목임금이 각각 2%씩 상승한 경우, 실질임금은 똑같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이 올랐다고 여기는 것처럼 물가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화폐의 절대 가치만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화폐환상 경향이 강할수록 순자산 규모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 자산 축적 능력이 부족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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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황인도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이 28일 발표한 ‘한국의 화폐환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총 500여명에게 7가지의 질문을 한 경우 4가지(57%) 답변에서 사람들이 화폐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서울 및 4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20~59세 성인 남녀 500명(성, 연령, 지역별 인구 비례할당)을 대상으로 지난 2018년 6월 25일~7월 13일 진행했다.
화폐환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질문은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항목이었다. 동일한 시점에서 2억원 짜리 집을 구입한 A, B, C 세 사람이 1년 후 주택을 매도한 금액은 매입가 대비 -23%, -1%, 23%였는데, 물가 상승률이 각 25% 하락, 0%, 25% 상승으로 이를 적용한 실질수익률은 A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응답자의 56.4%가 C가 가장 부동산 거래를 잘했다고 답했으며 실질수익률이 가장 높은 A씨가 거래를 가장 잘했다고 응답한 비중은 25.4%에 불과했다.
임금과 관련한 질문에 있어서도 명목임금에 더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물가를 고려한 실질 임금은 동일한 7%였지만 물가상승률이 0%일 때 임금 7% 삭감은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5.8%로 높은 반면 물가 상승률이 12%일 때 임금을 5% 인상하는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8.8%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에 대한 경험치가 적을수록 화폐의 실질 가치를 따져볼 필요성이 크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응답자가 거주지역에서 최근 3년(2015∼2017년)간 경험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낮아 화폐환상 경향은 심하게 나타났다는 얘기다. 2015~2017년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1%초중반대에 불과했다. 최근처럼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시기에 관련 조사가 있었다면 화폐환상이 낮게 조사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화폐환상이 클수록 자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화폐환상이 높은 사람일수록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으로 주식을 활용하지 못했고 순자산 규모도 적었다. 특히 지방 거주자의 경우 화폐환상이 클수록 순자산 규모가 적었다. 지방의 평균 순자산 규모는 2억2800만원으로 서울 지역 거주자(4억3100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 지역은 예외적으로 화폐환상이 클수록 순자산 규모도 많았다. 서울의 경우 주택 가격이 높아 화폐환상과는 무관하게 순자산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한은은 화폐환상에 따른 순자산 증감이 서울, 지방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총 7가지의 설문조사 질문 중 4가지 질문에서 화폐환상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보였고 1가지는 미약한 상관관계를 보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도 화폐환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물가상승률이 수도권 보다 낮아 화폐환상이 높은 지방 거주자일수록 순자산 규모가 적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