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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박 전 원장은 출석 시간을 10여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7월 입은 다리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듯 힘겨운 걸음으로 포토라인에 선 그는 “오늘 저를 조사함으로써 개혁된 국정원을 더 이상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않길 바란다”며 “저는 국정원을 개혁하러 왔지, 삭제하러 간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어떠한 (자료)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다”며 “또 국정원장으로서 우리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호소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피살당하자 국정원 내 관련 첩보 보고서 등 46건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국정원에 고발당했다. 검찰은 피살사건 직후 열린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보안유지’ 지침을 내리자 박 전 원장이 보고서를 삭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당시 외교·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은 일제히 사건은폐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흐름은 검찰에 기운 분위기다. 앞서 법원은 서 전 실장에 대해 ‘범죄혐의가 중대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어 검찰은 그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피격 사실이 알려질 경우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해 은폐를 시도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도 혐의가 소명됐다는 판단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가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구속적부심 석방됐다. 검찰은 서 전 실장과 함께 김 전 청장도 재판에 넘기면서 유죄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검찰은 피격사건 조사 결과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최초로 대면 보고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지난 9월 대통령 기록관을 압수수색하고 증거물을 분석해온 검찰이 주요한 단서를 포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박 전 원장, 노 전 실장의 진술과 그동안 수집한 증거물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이들의 구속·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국정원장이 의혹에 휘말려 검찰에 불려오는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례로 임동원·신건 전 원장은 불법 감청 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건넨 혐의로 기소됐고 이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확고해 보이는 점도 박 전 원장에게는 불리한 대목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 등을 통과시키며 검찰 수사권 축소를 추진했고, 검찰은 이를 견제하려는 듯 야권 주요인사들의 권력형비리 수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명확한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월북자)으로 단정하는 건 유족이나 우리 국민에게 굉장한 상처”라며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참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미 일선 청에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