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3일 오전 10시께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 ‘낯익고도 낯선’ 한 인사가 출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윤증현(70) 전 기획재정부 장관. ‘따거(大哥·큰 형님)’ ‘카리스마 윤’ 윤 전 장관은 자타공인 대표 경제원로로 손꼽히지만, 재정·금융당국 수장이었던 그가 한은을 찾은 건 극히 이례적이다.
윤 전 장관은 이날 한은 측의 요청으로 간부 직원들에 2시간가량 특별강연을 했다.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윤 전 장관은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쏟아냈다.
“세계적인 추세가 중앙은행 역할도 많이 변하고 있으니 고용과 성장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외국 사례 참고해 한은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정부와 한은은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두 축”이라면서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고 그래야 나중에 합당한 정책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또 “중앙은행 창립 이후 맨날 견제하고 대립하던 정부 재무장관 출신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히스토리컬 이벤트(historical event·역사적 사건)’라고 본다”면서 “이주열 총재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타게팅(targeting·목적)도 중요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략 전술도 중요합니다. 이번 구조조정은 타게팅도 불분명하고 전략 전술도 틀려 먹었어요.”
윤 전 장관은 “예를 들면 산업재편 산업정책 측면에서 구조조정에 필요한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면서 “주무부처가 밑그림을 종합적으로 하면 부총리가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데 엉뚱하게 불쌍한 금융위원장이 뒤집어썼다”면서 “금융위원장이 산업재편까지 어떻게 하느냐. 순서가 잘못됐다”고도 했다. 큰 그림이 나온 후 자금조달과 실업대책 등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윤 전 장관이 한은을 방문한 건 무려 7년4개월여 만이다. 기재부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 2009년 2월 한은을 전격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는데, 그는 정부와 한은간 협력을 언급했다.
그렇다고 윤 전 장관이 한은과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2014년 당시 한 강연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최근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 과정에서 나오는 정부의 ‘한은 역할론’과 맥이 닿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