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세금을 피하는 방법

다국적기업·슈퍼리치
역외금융 통해 조세 회피
룩셈부르크·스위스 각광
부자들 돈 덜내는 만큼
서민들 세금 부담 커져
……………………………
보물섬
니컬러스 색슨|558쪽|부키
  • 등록 2012-06-21 오후 6:24:30

    수정 2012-06-21 오후 6:24:37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21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세금은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뉴욕 백만장자인 리오나 헬름즐리가 던진 발언이라 했나. 그래 여기, `별 볼일 없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이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루퍼트 머독. 미디어제왕으로 불리는 머독은 `폭스뉴스` `마이스페이스` `더 선` 등으로 뉴스 코퍼레이션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뉴스 운영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역외(offshore)금융을 통해 재주를 부리는 달인으로 꼽힌다. 호주달러로 신고된 뉴스 코퍼레이션의 재무제표상 계정을 한 번 보자. 364,364,000달러(1987), 464,464,000달러(1988), 496,496,000달러(1989), 282,282,000달러(1990). 장난처럼 보이는 숫자가 우연의 일치인가. 영국의 한 기자가 그 의미를 회계사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엿이나 먹어라!”다.

글로벌 경제·정치 분야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선진국들이 앞다퉈 벌이는 역외금융 행각을 폭로했다. 단순 절세 얘기를 벗어난다.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상한 조세피난처와 역외체제에 대한 고발이다. 지난 100여년에 걸쳐 세계금융자본에 끼친 해악을 파헤친다. 주장은 한 마디로 이렇다. “범죄자들이 암약하는 지하세계와 금융엘리트들, 외교·정보세력과 다국적기업들이 역외체제를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다.” 조세피난처들이 이미 글로벌 경제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발하는 주범도 된다. 조세피난처는 다국적기업과 슈퍼리치들이 앞다퉈 탈세·거래조작 등을 벌이는 주무대이기 때문이다.

역외시장은 한때 마약·도박 등 조직범죄와 관련된 돈이 은밀히 거래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마존 같은 세계적 기업도 공개적으로 이용할 만큼 보편화된 자금운용법으로 통한다. 사실 조세피난처는 비밀주의 사법체제와 동의어다. 조세회피뿐만 아니라 비밀주의도 가능하고, 다른 주권국의 법규정까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어서다. 한마디로 탈세의 치외법권이란 거다.

100년 탈세사 시작점을 글로벌 다국적기업의 개척자로 꼽히는 영국 베스티 형제로 봤다. 1차대전을 거치며 영국이 자국민 해외소득에 세금을 물리기 시작하자 형제는 당국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 전통적인 `비밀금고`의 대명사인 스위스도 빠지지 않는다. 2차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유대인의 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은행비밀주의는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도리어 제국주의에 둘러싸인 스위스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전략이었다는 거다.

1950년대 후반은 영국은행이 주도한 런던 유로마켓이 장악했다. 진정한 역외체제의 시작이었다. 이들에 대한 대척점은 뒤늦게 미국이 내놨다. 유로마켓에 자국은행들을 빼앗겼던 미국은 1981년 IBFs(미국역외금융시장)를 설립하며 조세피난처로 성장해갔다.

국가별 부패순위를 조사할 때마다 `가장 깨끗한 나라`로 분류되는 나라가 미국·영국·스위스라 했는가.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허위적인가는 다음 통계에서 드러난다. 금융비밀주의를 비판하는 전문가모임인 조세정의네트워크가 2009년 `금융비밀주의지수`를 집계했더니 미국·룩셈부르크·스위스·케이맨제도(카리브해 한복판에 위치한 섬나라)·영국이 5위까지 싹쓸이를 했다.

조세피난처는 일반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악은 일반인들에 미칠 수 있다. 일단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를 고착시킨다. 특히 가난한 나라의 지배엘리트들이 소득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자국의 부를 유출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이래 받아들여지는 누진세 원칙도 증발한다. 가령 1950년대 미국 기업들은 총소득세 중 40%를 부담했으나 현재는 20%로 떨어졌다.

`보물섬`. 그럴 듯한 제목이다. `Treasure Islands`란 원제 그대로를 번역했다. 해적보다 더한 악당들이 포진해 있는 현실판 무법지대란 의미를 씌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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