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홍콩까지 날아가 사업을 논의했던 지난 11일. 홍콩 청콩그룹 영빈관에 들어선 이 회장 옆에는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이 자리했다. 초거대기업의 총수간 회동으로 주목 받았던 이 회장과 리카싱 청콩그룹 회장간 사업협력 자리에 최 부회장이 직접 배석한 것이다.
안살림에 주력했던 역대 미래전략실장과는 달리 최 부회장은 현장 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동안 삼성의 기류는 총수가 나서는 사업협력 자리에는 해당 최고경영자(CEO)가 주로 나섰다.
|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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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해외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 미래전략실장이 직접 나선 것은 드문 일”이라며 “미래전략실장 취임 전 삼성전자 CEO 재직 당시 진행했던 사업을 끝까지 마무리하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 부회장은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배심원 평결 전 팀 쿡 애플 CEO와 막판 협상을 벌인 주인공도 최 부회장이다. 특허 소송전은 계열사인
삼성전자(005930)가 사활을 걸고 있는 사안이다. 지난 6월 이재용 사장이 리커창 중국 부총리와 면담할 때도 최 부회장이 직접 동행했다.
최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내치에 주력했던 역대 삼성 미래전략실장(구 비서실장) 13명과는 확연히 다르다.
| 고 소병해 전 삼성 비서실장(왼쪽)과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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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이후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변모했던 조직을 이끌던 과거 인사들은 사업 일선에 잘 나서지 않았다. 철저히 오너와 계열사를 잇는 가교 역할만을 수행했다. 1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고(故) 소병해 비서실장(1978~1990년)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1996~2008년) 등 대표적인 비서실장들이 총수의 ‘복심’으로 불렸던 이유다.
실제로 지난 4월 이 회장이 카를로스 슬림 멕시코 텔맥스텔레콤 회장과 회동했을 때도 당시 미래전략실장이었던 김순택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 회장이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5월 이 회장이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과 사업을 논의했을 때도 해당사업 CEO가 배석했다.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 취임 이후에도 이례적으로 현장 경영에 나서는 것은 불과 3개월 전까지 수행했던 삼성전자 CEO로서의 업무를 끝까지 마무리하려는 차원이다. 연말 정기인사가 아닌 연중 인사를 통해 미래전략실로 옮겼던 까닭에 최 부회장만큼 큰 이슈에 대해 잘 아는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은 그룹 전체를 뒤흔들만한 사안이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최 부회장이 현장에 자주 나서기는 했지만, 이는 삼성전자 시절 업무의 연장선”이라면서 “이 같은 업무들이 마무리되면 이 회장을 보좌하는 본연의 업무에 다시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