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전설' 키신저 전 美국무장관 타계…향년 100세(상보)

中과 비밀협상으로 미중 데탕트 이끌어
베트남전 종전으로 노벨상 받았지만 논란도
지난 7월에도 시진핑과 환담하며 노익장 과시
  • 등록 2023-11-30 오전 11:17:07

    수정 2023-11-30 오전 11:17:07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외교의 전설’로 불리며 1970년대) 미·중 간 데탕트(긴장 완화)를 이끌었던 헨리 키신저 전(前) 미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사진=AFP)


키신저어소시에이츠는 키신저가 이날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향년 100세.

1923년 독일 퓌르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키신저는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1938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하버드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를 연구·강의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프랑스·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가 빈 체제를 통해 세력 균형과 유럽의 안정을 이뤘다는 박사논문 ‘회복된 세계’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키신저는 1969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으며 현실 외교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국가안보보좌관로서 그가 처음 맡은 역할은 베트남전쟁 종전이었다. 그는 ‘미치광이 전략’, 즉 소련에 대한 핵공격까지 시사하며 북베트남을 협상장에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1973년 미국과 북베트남·남베트남은 강화 협정을 맺었고 키신저는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키신저가 캄보디아 무단 폭격, 남미의 군부 쿠데타 등과 연루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수상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후 키신저가 이룬 또 다른 업적은 미·중 데탕트다. 1971년 비밀 특사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그는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미·중 관계 개선을 논의했다. 당시 회담은 이듬해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키신저가 이룩한 데탕트는 1979년 미·중 수교의 초석이 됐다. 이 같은 공로로 1973년 국무장관에 임명된 키신저는 중동 전쟁 중재 등에서도 공로를 세웠다.

키신저는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지난 7월엔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을 나눴다. 시 주석은 “우리는 오랜 친구와 그의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 관계 강화에서 키신저가 세운 업적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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