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돈이 있어야 사랑도 싹트나`

  • 등록 2007-07-02 오후 5:11:54

    수정 2007-07-02 오후 5:11:54

[이데일리 박옥희기자]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돈 없어서 결혼 못한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우스갯소리 혹은 핑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작 현실을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결혼은 재테크`라는 말도 있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 상대방의 학벌, 직업, 집안, 외모를 제쳐두고 이제 돈을 최우선시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이 기사를 읽은 국제부 박옥희 기자의 생각입니다. 들어보시죠.

유 모씨는 서울 시내 유명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개업을 한 30대 초반 변호사입니다. 아직 미혼. 이른바 `마담뚜`들이 이런 우수 신랑감을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유씨도 마담뚜로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마담뚜가 연결해 줘서 나간 자리. 작고 예쁘장한 얼굴에 165센티미터 후반의 키. 일단 외모는 OK. 몇 차례 데이트를 해 보니 성격도 괜찮았습니다. 만난 지 몇 달만에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바로 며칠 전 결혼이 깨졌습니다. 고액의 소개비를 마담뚜에게 주고 유씨를 소개받은 여성은 계속 유씨에게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를 물어봤습니다.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지라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편인 유씨는 자동차를 바꾸는 등 변호사 품위 유지를 위해 쓴 비용 때문에 3000만원 정도의 빚이 있었고, 결국 이것이 알려지자 상대 여성과 크게 싸우고 결혼이 깨진 것입니다.

유씨는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 우수 신랑감을 찾는 여자들은 돈 밖에 모른다"고 푸념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자에 한국 결혼 문화에 대한 기사를 게재해 눈에 띄었는데요,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이라며 다소 비꼬는 기사를 썼더군요. 

기사에서 예로 든 20대 후반 박지희라는 여성은 평범한 자신의 집안 배경을 감추고 부자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매번 데이트에 나갈 때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디자이너 의상만 입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에 동참해 BMW까지 렌트해 줬다고 합니다.

박씨는 결국 잘 나가는 미디어 업체 사장인 동갑내기 남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상황이 좋지 않은 지원업체의 사장이었고 결혼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도 박씨와 같이 거짓 행세를 하고 다니는 남자였던 것입니다.

한국 결혼정보업체의 한 커플 매니저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학벌, 직업, 집안 등을 봤지만 이제 이런 것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고 중요한 건 돈이라고 말합니다. 미모는 문제가 안됩니다. 성형수술을 하면 되기 때문이죠. 

한국에 이런 세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1000억원대 자산을 갖고 있는 갑부가 데릴사위를 구한다고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공개모집에 나서 논란이 됐습니다. 데릴사위 제도야 예전부터 있었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실제로 돈을 내걸고 사위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다소 씁쓸했습니다.

데릴사위를 구한다는 갑부의 딸의 나이는 38세로 다소 많았지만, 해외 유학을 다녀왔고 연봉이 꽤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200만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한 남성은 "그녀의 단점은 나이가 좀 많다는 것과 키가 작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남자 친구들이 "어서 돈 모아서 집 한채 마련하기 전에는 결혼은 꿈도 못 꾸겠다"고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요즘 1등 신랑감이 `집 있는 신랑감`이라죠.
 
실제 주변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모두 가장 관심을 갖는 게 `집 장만은 했느냐`는 겁니다. 남자가 직접 샀으면 능력 있는 거고, 시부모가 해줬어도 당연히 좋습니다. 

그러나 정말 한국 젊은이들은 결혼할 때 돈만 중요시할까요. FT의 의견은 극단적인 경우들을 부각시켜 지나치게 일반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도 물론 중요하고, 돈에 가장 많은 가치로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아는 지 모르겠지만 FT가 한국 젊은이들이 `그렇다`라고 진단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 주위를 둘러봐도 연애를 통해 결혼하는 커플들의 중심에 돈이 전부인 것 같진 않습니다. 얼마 전 결혼한 제 친구는 신혼 살림을 전세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집 마련을 위해 남편과 같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자기 집을 가지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전세 집으로 시작하는 것은 살다보면 꽤 큰 생활 수준 차이를 가져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하나하나 내 손으로 살림을 장만해 나가던 기쁨이 매우 컸다고 말하는 나이든 부부들의 말도 새겨 들어볼만 합니다.
 
사랑, 돈, 능력, 외모, 학벌, 집안, 성격, 건강, 신용상태 등 결혼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중에 어떤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물질 만능`의 지배를 받고 있더라도 결혼만은 예외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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