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슬슬 퇴근 준비를 하려던 시각 외신 속보가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캄보디아서 한국인 13명 탑승 전세기 추락.`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하나 손이 다 떨리더군요. 바로 제 언니가 캄보디아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언니는 그제서야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할 가족을 위해 전화를 했다더군요. 언니 전화를 받기까지 5시간은 닷새보다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가족이 죽었을까 살았을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더군요.
지난 200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한국죽음학회`가 창립됐습니다. 죽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모입입니다.
이 학회 창립을 주도한 최준식 이화여대 종교학과 교수는 죽음을 거부하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와 같은 속담이 죽음에 대한 부정을 단편적으로 드러낸다고 말이지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들이 전부 한이 맺힌것처럼 우리네 사회는 죽음을 원한, 억울함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최 교수는 죽음에 대한 이같은 거부감은 고스란히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합니다. 서양의 경우 말기 암환자와 같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불치병 환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소원을 하나씩 풀며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반해 한국은 마지막까지 항암제 투여를 선택받으면서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지요.
장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계실때 효를 다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 가시는 길 화려하게 나마 해드리고 싶은 자식들 마음은 마찬가지. 그 비용은 무려 1년에 27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품위있는 죽음`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품위있는 삶`이 그것이지요. 아둥바둥 발버둥치며 죽기 싫다면 살면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 그 해답입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죽음학자인 알폰스 디켄 박사도 최 교수와 마찬가지 화두를 던졌습니다. `잘 죽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사는 `웰빙`이 웰엔딩의 해답이 아닐까 합니다. 웰빙의 끝은 웰엔딩입니다. 아니 웰엔딩의 시작이 웰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K이동통신 광고에도 나온 적이 있는 아일랜드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합니다. 묘비에 어떤 말을 적을지 우물쭈물하지 말고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웰빙 아닐까요.
※이번 캄보디아 여행기 추락사고로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사고자 가족들에게도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