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기업이 망한적 없다`는 경험칙과 `설마 망하겠는가`라는 현실론에 안주하기엔 나라안팎의 여건도 녹록치 않다. 민간에서 시작된 부실이 공공부문으로 전이되는 속도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경제권에서 가팔라지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해부와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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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덩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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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7년 2조5600억원에 불과했던 지방공사채의 발행잔액(등록발행 기준)은 이듬해 4조400억원으로 늘어난 뒤 올 6월말 현재 16조9800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새 지방공기업의 사채발행 잔액이 거의 7배로 불어난 것이다.
◇ 고개드는 `설마`
지난 2년간 지방공사채는 별 무리없이 소화됐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고조된 안전자산 선호심리와 수익률 측면에서 국채 보다 매력적이라는 인식 덕분이다. 특히 지자체가 설립한 공기업인 만큼 상환능력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투자자들의 거부감도 적었다.
◇ 옥석가리기
지방공기업 마다 재무사정이 다르고 모기업뻘인 관할 지자체의 재정건전성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지방공기업에 부여된 신용등급은 천편일률이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17개 주요 지방공기업에 대해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긴 신용등급은 AA+ 아니면 AAA다.
회사의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부채비율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가 뒤를 받쳐 줄 수 있다는 게 높은 평점의 주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이 문제를 투자자 보호 측면 뿐만 아니라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김동열 연구위원은 "지방공기업을 동원한 선심성 사업과 난개발, 이에 따른 공공부채 증가를 제어하기 위해선 지방공사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더 차별화해 시장의 냉엄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신용평정이 지방의 무분별한 재원낭비를 방조하고 있다"며 "시스템적인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 변화를 요구하다
시장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SK증권의 이하정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지방공기업의 신용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시장은 이미 옥석가리기에 돌입한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방공기업에 대한 등급평정이 더 정밀해질 경우 순기능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용평가업계 내에서도 보완책 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정부의 재정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신용등급과 이를 배제한 지방공기업 자체의 재무상황만을 고려한 개별등급(Individual rating)을 따로 산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