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아파트값 비싸다` 강경발언 왜

  • 등록 2009-07-09 오후 4:16:10

    수정 2009-07-09 오후 5:51:45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만약 한국은행이 모든 경제지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즉 마음대로 경기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면 기준금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려고 할까.

한국은행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금리 수준이 뭐냐는 질문인데, 이런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성태 한은 총재가 올해 초에 던져준 적이 있다.

바로 "기준금리를 2%로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은 통화정책을 이미 `굉장히` 완화한 상태"라는 언급을 통해서다. 당시 이 총재의 이 발언은 `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요구에 대해 `그렇지는 않다`는 반박을 하면서 나온 것이었지만, 어쨌든 거기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수준은 2%보다는 `굉장히` 높아야 한다는 이 총재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질문은 애초부터 우문이다. 한국은행이 경기를 마음대로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리만형제의 난(亂)` 이후에 우리 경제는 외부 변수에 더욱 민감해졌다.

한국경제가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면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도 결국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언제 쓸 것이냐는 질문을 한국은행 총재에게 자꾸 던지는 것은 그래서 넌센스다. G20 정상회의에나 가서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이 총재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앞으로 경제상황이 저희가 예측했던 것하고 비슷하게 가느냐 아니면 좀 다르게 가느냐 이런 데에 따라서 통화정책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그 정도 말씀 밖에 드릴 수가 없겠네요"

거칠게 요약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좀 답답했겠지만 채권시장은 환호했다.

채권시장이 국고채 금리를 4% 아래로 끌어내리며 좋아한 것은 하반기 경기가 그다지 좋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전망에 반응한 측면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는 한국은행의 고백을 듣고 흐뭇해한 결과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있듯이 한국은행 역시 모른다는 말은 가만히 있겠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다.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건 결국 그런 뜻이다.

한국은행이 당분간 가만히 있겠다고 한 것은 앞이 잘 안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앞서서 움직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물가도 별로 오르지 않고 있고 환율도 안정적이다. 그나마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카드게임으로 치면 상대가 베팅을 약하게 하는 바람에 콜을 하고 패를 한장 더 받아볼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강타자가 타석에 올라왔지만 볼 카운트가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정도여서 공을 한 두 개 빼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꿈틀거리는 아파트 값이다.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건 대출이 늘어난다는 것과 동의어다. 경기 상황이 불투명한데 대출을 늘리는 건 마른 짚을 등에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사실 한국은행이 더 곤혹스러운 건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한은이 곧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해석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가만히 있겠다고 하는데도 시중금리는 제멋대로 올라간다.

이날 이성태 총재가 아파트값에 대해 `집값이 여기서 더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매우 노골적으로 선을 그은 것은 까불거리는 1루 주자를 향해 던지는 일종의 견제구다. 내가 상대할 타자는 따로 있으니 좀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어쩌면 `너마저 그러면 내가 아주 피곤해진다`는 하소연일 수도 있다.

부동산 가격에 대한 한은 총재의 공격적인 발언을 시장이 공포탄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파트 값이 문제`라는 중앙은행 총재의 노골적인 발언을 듣고도 시장금리가 오히려 내려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운신의 폭이 좁은 중앙은행의 난처한 입장을 시장이 읽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한국은행의 힘이 강했던 적도 드물고, 또 요즘처럼 한국은행이 무력할 때도 없었다는 상반된 두가지 명제에 모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아이러니지만 현실이다.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돈 나올 곳은 중앙은행밖에 없지만 `전대미문의 위기`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는 것 역시 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도박이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손예진, 출산 후에도 여전
  • 돌고래 타투 빼꼼
  • 한복 입은 울버린
  • 관능적 홀아웃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