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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전문가 다수가 이건희미술관을 새롭게 건립할 때 예상되는 문제로 가장 많이 지적한 의견은 ‘기증자의 뜻에 반한다’(48.3%·복수응답)였다. 기증한 예술품 전체를 모아놓는 이건희미술관이 이미 시대별로 분리 기증한 기증자의 의사에 역행한다는 뜻이다. 그다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유치경쟁을 끌어내고 있는 ‘건립 장소 선정의 어려움’(40.8%·복수응답)을 꼽았고, 미술계 전문가들답게 ‘시대·유형별 분류를 원칙으로 하는 박물관학에 반한다’(35%·복수응답)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문화미술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삼성가 기증 이건희컬렉션 활용 방안’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9일 결과를 발표했다. 200명에게 발송한 설문에 답변자는 148명, 74%의 참여율을 보인 설문은 ‘기증자의 분리 기증 뜻을 살려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하자’(78.4%)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가장 큰 이유로 ‘한국사에서 상실한 근대사의 복원과 근대미술의 연구가 필요해서’(75.3%)를 꼽았다.
모임이 주장하는 핵심은 이건희(1972∼2020)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토대로 한국에 이제껏 없는 국립근대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삼성가에서 기증한 근대미술품 10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근대미술품 2000여점을 모아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를 기본줄기로 삼았다. 국립근대미술관이 들어설 최적의 후보지로는 서울 종로구 소재 ‘송현동 부지’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추천하고 있다. 이중 ‘송현동 부지’는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뛰어든 과정에 나온 이건희미술관 설립 후보지와 겹치는 장소라 관심이 쏠린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미술계 전문가들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작가, 예술학·박물관학자, 언론인·비평가, 갤러리스트·옥셔니스트, 문화행정가 등이 고르게 포함됐다. 이들은 지자체가 이건희미술관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로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수사’(51.4%)라고 판단한 데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한 지역의 합당한 요구’(12.3%)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했다. 이외에 ‘이건희미술관 설립을 논의하기 전에 각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시설을 제대로 활용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과 함께 ‘기증한 작품으로 또 하나의 ‘리움미술관’을 국가가 만드는 모습이 이상하다’는 의견 등도 내놨다.
한편 이건희미술관 설립을 두고 결정의 칼을 쥔 문화체육관광부는 여전히 신설 방향과 방침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이건희미술관 신설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 미술계를 비롯한 각계 의견 수렴 중”이란 발표 이후 더 드러난 윤곽은 없는 상태다. 다수의 관계자들은 당초 예상보다 지연돼 이르면 15일께, 늦어도 이달을 넘기지 않아 문체부가 결정한 이건희미술관 신설 방침이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