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한지로 데려온 담벼락 그림…이재훈 '피고, 날리고, 퍼지고'

2022년 작
외벽 빠르게 긁어낸 듯한 외형·내용으로
장지에 석회 바르고 색 올려 배어나오게
서양벽화기법 접목한 '수묵채색 추상화'
  • 등록 2022-11-08 오전 11:18:50

    수정 2022-11-08 오전 11:18:50

이재훈 ‘피고, 날리고, 퍼지고’(2022·사진=페이토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형체를 찾자고 뚫어져라 쏘아보는 건 무의미하다. 선과 선이 만든 면이 특정 장면을 염두에 둔 건 아닐 테니. 그저 담벼락 낙서쯤으로 여기는 게 편할 수도 있다. 내용만이 아니다. 외형상 진짜 그렇기도 하다. 건물 외벽을 빠르게 긁어낸 듯 보이니까.

작가 이재훈(44)은 ‘특별한’ 한국화를 그린다. 전통의 기법과 소재를 기꺼이 깨버린 게 ‘특별’하다는 건데. 한마디로 프레스코기법을 접목한, 구상과 추상이 섞인 수묵채색화. 맞다. 작가는 오래전 서양의 벽화에서 봤던 그 방식을 한지에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장지에 석회를 얇게 바르고 그 뒤에 색을 올려 은은하게 배어나오도록 하는 배채법. 덕분에 종이는 어느 벽기둥인 양 돌 같은 거친 질감을 입고 있는데.

이미 미대 3학년인 2000년부터 시도한 벽화기법이란다. 회칠은 같지만 서양벽화와는 차이가 있다. 서양식이 젖은 상태에서 색을 올리는 ‘습식’이라면 작가는 말려놓은 뒤 색을 붙이는 동양식 ‘건식’이다. ‘피고, 날리고, 퍼지고’(2022)는 여전히 지난한 완성을 향해 가는 ‘작가만의 한국화 실험’ 중 한 점. 예전과 달라졌다면 좀더 ‘추상’으로 향한 거랄까.

13일까지 서울 중구 동호로 페이토갤러리서 차영석과 여는 2인전 ‘선 위에 선’(Line on the Line)에서 볼 수 있다. 선을 주요 조형요소로 삼은 두 작가의 20여점을 걸었다. 장지에 석회·먹·목탄·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 79×50㎝. 페이토갤러리 제공.

이재훈 ‘반짝, 번쩍, 반짝’(2022), 장지에 석회·먹·목탄·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 135×90㎝(사진=페이토갤러리)
차영석 ‘어떤 것’(Something s-63‘(2017), 닥지에 연필, 90×90㎝(사진=페이토갤러리)
차영석 ‘은밀한 습관 21’(2014), 닥지에 연필·금색연필, 75×142㎝(사진=페이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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