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엿보기)치킨게임과 진정한 승자

  • 등록 2007-07-11 오후 4:33:04

    수정 2007-07-11 오후 4:33:04

[이데일리 배장호기자] 펀드에 투자하다보면 심심찮게 마주치게 되는 것이 게임상황이다. 특히 대기업의 회계 부정이나 부도 소식으로 관련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이 급락할 때 이러한 게임 상황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여기서 게임은 `닌텐도` 처럼 혼자하는 놀이가 아니다. 적어도 두사람 이상이 상대방의 반응을 합리적으로 예측하며 승패를 가릴 수 있어야 한다.

펀드 투자도 복수의 투자자(수익자)를 전제로 각자의 투자 수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게임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물론 자산운용상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때는 게임상황이 생기지 않는다. 이때는 펀드 내 모든 수익자들의 이해관계가 펀드 수익 극대화란 목표 하나에 합치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익자들간에 이해가 부딪히는 순간에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펀드런(fund-run 대량환매사태)이다. 펀드런 상황에서는 먼저 환매해 나가는 수익자가 피해를 덜 보게 된다. 이는 순전히 남아있는 수익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지난 2003년 국내 펀드시장은 SK글로벌 회계 부정 스캔들과 LG카드채 부도 위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당시 SK글로벌 주식과 채권, LG카드채의 가격은 급락에 급락을 거듭했다.

이들 주식과 채권의 최대 투자자 중 하나였던 국내 펀드들은 수익자들의 빗발치는 환매 요구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수익자들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돈을 찾아야만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과 개인을 불문하고 모든 수익자가 환매에 나섰고, 자산운용사는 대량으로 몰려든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한 주식과 채권을 대거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자산운용사들이 대대적인 보유자산 매각에 나선 영향으로 SK글로벌과 LG카드의 주식과 채권값은 한층 더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대량 환매가 투자자산 가치 급락을 초래하고, 자산가치 급락은 또 다시 대량 환매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

이러한 악순환의 종말은 당연히 `공멸(共滅)`이다. 자본시장 전체의 붕괴를 우려한 금융감독당국은 급기야 펀드 환매 중지명령을 내렸다. 투자자들은 정당한 `내돈`을 내 뜻대로 찾을 수 없는 기구한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펀드런 사태는 국내 투자자들이 처음 겪는 게 아니었다. 불과 수년전 일어났던 대우그룹 워크아웃 사태 당시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공멸의 시나리오가 별다른 학습효과도 없이 반복됐던 것일까. 해답은 게임상황하에서는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구성원 전체의 합리적 선택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데 있다.

펀드런의 예에서 모든 구성원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가 환매를 자제하는 것, 즉 대량환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투자자산의 추가적인 가치 하락없이 공평하게 돈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수익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수익자들이 환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나혼자만` 환매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하면 모두가 환매를 자제하는 것보다도 피해가 더 적다. 반대로 남들이 다 환매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 환매하지 않으면 최악의 피해를 면키 어렵다.

문제는 상대방이 환매에 나설지 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 있다. 때문에 최악의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환매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례들에는 중요한 펀드 투자 교훈이 숨어있다. 우선 모두가 공멸하는 `치킨게임`(어리석은 게임)에서 서둘러 벗어날 수 있는 능력있는 운전사(자산운용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SK글로벌이나 LG카드채 사태 당시에만 해도 사태를 예상하고 미리 해당 자산을 처분해 수익자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던 자산운용사가 있었다.

역발상도 좋은 전략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가 SK글로벌과 LG카드의 주식 채권을 회피할 때 자산가치 급락을 즐기던 부류도 있었다. 어떤 자산운용사는 LG카드채에만 주로 투자하는 LG카드채 전용펀드를 만들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당시 SK글로벌과 LG카드가 부도 직전의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이후 극적인 회생에 성공했다.

기업들의 회계가 투명해지고 재무 건전성도 높아진 요즘이긴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최근 투자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소형주펀드`를 한 번 보자.

중소형주펀드는 한때 연 100%가 넘는 대단한 수익률을 구가하다 몰려든 환매 때문에 한순간 마이너스 수익률로 급락한 전례가 있다. 카드채 사태 처럼 파국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수익률만 믿고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로서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펀드수익률을 접하며 쓰린 속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당시 이 펀드가 인기를 끌자 자산운용사들은 너나없이 중소형주펀드를 만들어 팔았고, 몰려든 투자금을 무기로 중소형주들을 무차별 사들였다. 모두가 가치 투자를 표방했지만, 순전히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끌어올려진 중소형주들은 더 이상 가치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선전하며 수익률을 방어해내던 중소형주펀드들이 있었다. 이 펀드들은 투자 여력을 넘는 돈은 더 이상 받지 않았다. 투자자들도 운용사의 투자철학을 믿고 섣불리 환매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 펀드는 당장의 수익률에 연연하지 않고 주가가 내재가치 이상으로 오르면 주저없이 팔고, 더 싼 주식을 찾아나선 덕에 `덜 화려하지만 생명력 긴` 명품펀드로 시장의 인정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있게 봐야 할 펀드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눈앞에 몰리는 돈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처음의 투자철학을 지켜낼 수 있는 자산운용사의 펀드라면 투자자들이 믿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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