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어르신 장롱면허, 교통카드가 깨웠다

日 79세 운전자 보행로 운전 '아찔'
5년 뒤 초고령화 사회 진입 한국도 고령자 사고 해마다 늘어
서울시, 지난해부터 면허반납 시 교통카드 지급
일회성 인센티브 지원으로 한계…노인 복지 차원에서 적성검사 방식 등 개편해야
  • 등록 2020-10-21 오전 11:01:00

    수정 2020-10-22 오전 11:03:05

어르신장농면허깨운 교통카드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지난 13일 일본에서 보행로를 주행하는 차량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영상 속 주인공은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사는 79세 남성. 지난 9월 초 폐쇄회로(CC)TV와 휴대전화에 찍힌 영상을 보면 이 운전자는 차도 옆 보행로에서 나란히 주행하는 것은 물론 보행자, 자전거와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보행로 1.5km를 주행하는 동안 스쳤던 시민들은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을까요.

일본 민영방송 후지뉴스네트워크(FNN) 보도 갈무리.


日 고령 운전자 보행로 운전 ‘아찔’…한국도 남일 아냐

일본 민영방송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 따르면 이 남성은 보행로를 주행한 데 대해 “운전 중 길을 잃어 보도를 달린다는 걸 알게 됐지만 차선 분리대에 막혀 보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교통위반 범칙금을 내고, 가족들이 설득한 끝에 지난 6일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했습니다. 보행로 주행 사건이 터진 지 한 달 만입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안전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5년 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도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실제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 건수는 2015년 2만3063건에서 지난해 3만3239건으로 4년 사이 144%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고령 운전자는 334만명이지만, 5년 뒤에는 498만명으로 5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서울시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안전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운전면허 자진반납 어르신 교통카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1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한 것입니다.

지난해 면허 자진반납에 따른 교통카드 지원규모는 7500명. 올해는 목표치 1만7685명 가운데 20일 기준으로 1만4168명이 교통카드를 받아갔습니다. 지난 6월까지 예산 문제로 올해 이월된 5900여명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8200여명은 7월부터 수령한 점을 고려하면 연말까지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2019 부산 헬스케어 위크’ 행사장 내 도로교통공단 부스를 찾은 어르신들이 고령운전자 인지능력자가진단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시, 자진반납 시 10만원 교통카드 지급…1만4100여명 목표 청신호

서울시가 7월부터 면허반납을 간소화한 점 역시 교통카드 수령자가 늘어난 요인으로 꼽힙니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을 방문하지 않고 동주민센터에서 운전면허 반납과 교통카드 발급을 동시에 제공하는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반납 원스톱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세교 서울시 도시교통실 교통안전팀장은 “일회성이긴 하지만 교통카드 지급이라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평소 운전을 하지 않는 장롱면허 소지자까지 자진 반납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까지 지급키로 한 교통카드를 다 소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는 내년에도 올해 규모의 교통카드 지원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문제는 예산입니다. 올해 예산 17억7000여만원 중 서울시가 42%를 부담했고 나머지는 티머니복지재단과 경찰청이 각각 33%, 24%씩 지원했습니다. 서울시는 두 기관에 올해 수준의 예산을 요청할 계획이지만, 티머니복지재단의 경우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대중교통 이용자가 30% 가량 줄어 관련 예산이 유지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게 서울시 안팎의 관측입니다.

고령층 운전 포기 인센티브 일회성 지원 한계…검사 방식도 바꿔야

전문가들은 교통카드 지급도 좋은 대안이지만 지속적 면허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차량 운행을 포기하는 인센티브로 10만원 짜리 교통카드를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것으로는 정책 유인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죠. 매달 2~3회 정도 택시 이용권을 추가로 지급하거나 운전보조장치가 달린 차량 구입시 지원금을 주는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경우에도 지난 3월부터 65세 이상 고령자가 ‘안전운전 지원 차’를 구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막고, 자동차업계의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교통카드 지급이라는 단발성 혜택보다 면허반납 후 대중교통과 택시 등 이용권을 제공하는 등 고령 운전자가 이동 시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면 재정 여건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는 만큼 중앙정부가 교통문제가 아닌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적성검사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능력 적성검사는 도로교통공단에서 65세 이상은 5년, 75세 이상은 3년마다 받아야 합니다. 공단의 적성검사로 고령 운전자의 건강상태와 인지능력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가 검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같은 70대 운전자라도 신체적 능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어 나이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검사 주기를 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고령 운전자에 대해 의사가 운전능력을 정밀하게 검사를 할 수 있게 제도적인 보완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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